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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문학상 『사서』 옌롄커 “생명의 마지막 시간, 철저하게 서재로 돌아가서 글쓰기 속 침묵을”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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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0-05 07:30:00 수정 : 2022-10-04 18:5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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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과 3년 대기근, 지식인들에게 가해진 혹독한 탄압과 그들의 기회주의적 처신.... 중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참했고, 황폐했으며, 그래서 중국 사회가 가장 잊고 싶고 감추고 싶었던 시대를 되살려보고 싶었다. 펄펄 살아 뛰는 인물과 감성적인 이야기로.

 

음, 또 다른 ‘서랍 문학’이 될 지도 모르겠군. 문화대혁명과 지식인의 글쓰기를 다룬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했을 때, 작가 옌롄커는 작품 출간을 염두에 두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환경’에 맞는 출판을 지향한 게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반영하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소망했다. 이를 통해 모든 구애,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아 자유롭다는 말은 잡다한 내용을 적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글을 쓸 때 정말로, 철저하게 어휘와 서술에서 자유로워져 새로운 서술 질서를 만들어낸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서술 질서’ 속에서 저는 필묵과 출판의 노예가 아닌 글쓰기의 황제가 됩니다. 저는 그렇게 ‘중국식 글쓰기’의 황제이자 반역자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한국어판 저자 서문」 중에서)

 

장편소설 『사서』의 집필을 끝마치자, 그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많은 출판사 동료들이나 책임자들에게 원고를 보여주고 출간을 타진했다. 스무 군데가 넘는 출판사와 접촉했지만, 책을 출판하겠다고 나서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완곡하거나 아주 단호하게 거부했다. 어렵게 2011년 대만과 홍콩에서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2012년 출판사 자음과모음에 의해 번역 출간됐다. 예상대로 중국 정부는 공산당 정권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본토에서 출판을 금지했다.

 

『사서』는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인들이 수용된 황하 유역의 강제노동수용소 99구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통해 권력의 무자비함과 비정함, 지식인들에게 가해진 탄압, 생존을 위한 기회주의적 처신과 처절한 글쓰기 등을 다채롭게 그린 작품이다. 네 권의 책 『죄인록』, 『옛길』, 『하늘의 아이』, 『시시포스의 신화』를 액자 소설처럼 배치하고 ‘밀고자’와 후일 권력자 ‘아이’, ‘작가’, ‘학자’라는 각기 다른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문화대혁명의 의미와 그 상흔을 중층적으로 파헤친다.

 

중국의 작가 옌롄커가 소설 『사서』로 제6회 ‘이호철 통일로 문학상’을 수상한 뒤 최근 방한해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승렬 선정위원장은 『사서』에 대해 “중국 문화대혁명 시절 공산당 정부의 전체주의가 개인 주체의 개별성을 어떻게 완벽하게 허물어뜨리는 폭력성을 지녔는가를 장중한 서사를 통해 그려냈다”며 “온갖 사소하고 개인적인 작은 이야기에 몰두하는 한국문학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거울”이라고 평했다.

 

옌롄커는 국내에서 영화로도 제작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비롯해 『일광유년』, 『물처럼 단단하게』, 『레닌의 키스』, 『딩씨 마을의 꿈』 등을 펴내면서 중국 당국과 불화를 겪어왔다. 그의 작품 가운데 여덟 권 이상이 중국에서 금서로 지정됐지만, 미국과 영국 등 세계 20여 개 국에 번역 출간돼 글로벌 작가로 자리를 굳혔다. 최근 들어선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도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작가 옌롄커는 장편 『사서』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고,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의 작가적 행로를 어디로 향해 가고 있을까. 작가를 지난달 29일 서울 중국 프레스센터에서 내외신 기자들과 함께 만났고, 이후 다시 개인적으로 짧게 만났다. 청바지에 청색 티셔츠를 입은 그는 기자회견과 인터뷰에서 거침없고 호쾌한 모습으로 자신을 의견을 밝혔고, 대답 뒤에는 감사하다는 의미의 “시에시에(謝謝)”를 연발했다. 특히 3년 만에 처음 해외여행이라고 밝힌 그는 “아내와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비행기를 어떻게 타는지 방법도 잊어버렸다”고 웃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나 중국의 정치 이슈 등 곤혹스럽거나 민감한 질문에는 답을 하지 않거나 조금 맥락이 다른 답을 내놓았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

 

“지난 6월 통역을 해주는 김태성 선생으로부터 이 상이 얼마나 특별한 상인지를 알게 됐다. 이 상에는 작가의 예술과 투쟁 정신이 충만해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받은 어떤 상보다 기뻤다.”

 

―수상작 『사서』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서』는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책이다. 선정위원장이 거론한 문화대혁명이나 대약진, 대기근을 이야기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양한 예술적인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저에게는 소설의 언어와 구조, 서술, 시지프스 신화에 대한 예술적 탐색이 더 중요하다. 한국 독자들도 작품을 읽을 때 내용뿐만 아니라 언어적 서술이나 표현 방법, 서양과 동양의 종교 같은 것들을 이해하면서 읽어주기를 부탁한다.”

 

―『사서』는 중국 문화대혁명을 다양하게 다뤘는데.

 

“문화대혁명은 수백 수천 년의 중국 역사를 생각해도 너무나 거대하고 큰 사건이었다. 어떤 독특하고 잔인한 상황은 시대를 초월해 어느 시대에도 사유의 대상이 된다. (오늘날과 유사성은 없는지) 문화대혁명이 중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지금도 당시의 영향이 일부 남아 있는데, 제일 큰 부분은 역시 언어다. 폭력적인 언어, 언어의 폭력성이 가장 크게 남아 있다.”

 

―한국에선 『사서』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가장 화제가 됐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와 『사서』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화제가 됐다고 했는데, 개인적으론 『사서』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비교적 흥미롭고 읽기 쉬운 책이라면, 저는 『사서』에서 다양한 예술적인 창조나 시도를 했다.”

 

“아가, 저건 먹을 수 있는 흙이란다.” 다섯 살 소년 옌롄커는 어느 날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관음토라는 흙 앞에 선 뒤 어떻게 하면 흙을 먹을 수 있는지를 배웠다. 이어지는 사회적 격변, 공기 같은 배고픔, 가까운 농촌의 절망과 저 멀리 도시에 있는 듯한 희망.... 소년은 가난한 시골에서 배 불리 먹고 싶었다. 밭에서, 시골에서 벗어나 도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소년 옌롄커에게, 청년 옌롄커에게 글쓰기야 말로 유일한 희망이자 구원의 사다리였다.

 

“제 글쓰기의 발단은 소년 시절 배 불리 먹고, 시골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어요. 글쓰기 때문에 신분상승을 할 수 있었고, 도시로 들어올 수 있었지요. 글쓰기의 처음 목적은 이름을 날리고 일가를 이루는 것이었죠.”

 

1958년 중국 허난성의 가난한 농촌에서 2남2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옌롄커는 군대 내 문학창작반에서 활동하던 1979년 잡지 『전투보』에 단편 「천마 이야기」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그해 여름의 끝(夏日落)』(1992), 『일광유년』(1998), 『물처럼 단단하게(坚硬如水)』(2001), 『레닌의 키스(受活)』(2003),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努力人民服務)』(2005), 『딩씨 마을의 꿈(丁庄梦)』(2006), 『사서(四書)』(2010), 『작렬지(炸裂志)』(2013), 『해가 꺼지다(日熄)』(2015) 등을 펴냈다. 제1회, 제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 2014년 카프카상 등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 세계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눠 볼 수 있다. 1978년부터 1991년까지 처음 23년간은 사실주의와 혁명 영웅주의에 바탕으로 한 작품을 주로 썼다. ‘정통적 글쓰기’의 시대로, 그는 “중국문학의 요구에 상당히 부합하는 글쓰기였다”고 회고했다. 이어서 1992년 장편 『그해 여름 끝』이 자신의 첫 금서가 된 뒤로는 장편 『일광유년』과 『물처럼 단단하게』, 『레닌의 키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딩씨 마을의 꿈』, 『풍아송』, 『나와 아버지』 같은 많은 문제작을 썼다. 특히 2003년 출간된 장편 『레닌의 키스』가 큰 쟁론에 휘말리면서 2005년 군대를 떠나야 했다. 그는 “인생과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어두운 시기였다”며 “어둡고 괴로운 시간, 망설임과 배회의 기간이었다”고 말했다. 2012년 소설 『사서』와 문학이론서 『소설의 발견(發見小說)』을 통해 이른바 ‘신실주의의(神實主義)’ 소설미학을 제시하며 새로운 단계로 나아갔다. 신실주의의 영향 아래 『사서』와 『작열지』 같은 소설을 창작했고, 『해가 꺼지다』와 『캄캄한 낮, 환한 밤』, 『심경』 같은 소설을 썼다.

―최소 여덟 권 이상의 책이 중국 본토에서 금서로 지정됐는데.

 

“저의 작품 모두가 출판되지 않는 게 아니다. 일부 작품은 출판됐다. 대륙에선 출판되지 않았지만, 홍콩과 대만에서 중국어로 출판됐기에 대륙 작가들도 읽을 수가 있고, 본토 독자들과 교류할 수 있다. 대만에서 출판된 책들도 모두 중국어로 출판되고 있다. 대만의 출판이 중국 대륙의 출판을 보완해 준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상황은,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경직돼 있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자유로운 상황도 아니다. 중간 정도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아주 특별한 문화 환경이기 때문에 작가가 쓰는 대로 다 출간된다는 것도 문제이고, 어느 정도 금서가 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출판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독자가 읽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다.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이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독자가 그 글을 읽는지 읽지 못하는 지보다 더 중요한 문제다.”

 

―언젠가 『딩씨 마을의 꿈』을 쓸 때 정부 구미에 맞춰 이야기를 수정하면서 현실에서 약간 벗어난 이야기가 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중국이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모든 책이 다 출판돼도 문제라고 얘기한 부분에 대한 답변이이 될 수 있다. 『딩씨 마을의 꿈』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가급적 사실을 아름답고 멋지게 쓰겠다는 각서를 썼지만 나중에 정부에 의해 금서가 지정돼 괜히 각서를 쓰고 내용을 수정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창작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사회 현실과 작품의 관계는.

 

“작품이 국가나 사회 혹은 사람들의 생활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중국 문학에 영향을 미친다기보다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나 이야기 자체가 이미 위대한 문학이고 위대한 이야기다.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건 진실한 표현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처해 있는 현실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노신과 그의 소설 『아큐 정전』을 어떻게 생각하나.

 

“노신은 중국 현대문학 이래 가장 위대한 작가다. 지금까지 노신을 넘어서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큐 정전』을 10번이 넘게 읽었는데, 중국이 가장 골치 아프게 생각하는 인물상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큐 정전』 같은 작품을 써낼 수 있다면, 아큐 같은 인물을 그려낼 수 있다면, 굉장히 만족스럽고 성공한 것이다.”

 

―현재 관심을 갖고 있거나 구상 중인 작품이 있다면.

 

“아직도 쓰고 싶은 이야기, 아마도 영원히 다하지 못할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저에겐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보다 어떤 방법으로 그 이야기를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떤 방법으로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출판 여부와 상관없이, 제가 만족할 수 있고 기존 글쓰기를 초월할 수 있는 작품을 써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난해 중국 고대문학 『요재지이』를 장편소설로 다시 쓰는 작업을 완료했다. 최근 2년간 프랑스 희곡들을 읽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희곡 작품들을 읽으면서, 소설이 이들 희곡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돌파구를 찾고 있다.”

 

―최근 꾸준히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데.

 

“(그는 질문을 세 번이나 받은 뒤에야 짧게 답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저에게 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썼던 소설보다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것이다. 세계 독자들이 읽은 적이 없는 작품을 쓸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런 노력을 하고 있으며, 그런 야심을 가지고 있다. 이 일이 가장 중요하고, 그 외의 일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65세가 돼 창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압박감과 긴장감을 대단히 크다.”

 

1978년 인민해방군에 입대한 이래 28년간 직업군인으로 일한 그는 1984년 허난성 카이펑 출신의 군인이던 아내와 결혼한 뒤 그녀의 도움으로 농촌을 벗어날 수 있었다. 중국작가협회 소속 1급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 학기는 베이징에서, 다른 한 학기는 홍콩에서 거주하며 인민대학과 홍콩 과기대에서 교수로 근무 중이다.

―최근 중국 모습을 어떻게 보는가.

 

“지난 3년 동안 팬데믹으로 인민 생활이 굉장히 어려워졌다. 특히 노동자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세계적으로 비슷한 상황이긴 하지만, 중국 농촌이나 노동자 생활의 어려움은 한국에선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3연임을 추진 중인데) 저는 정치보다 인민 생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년이면 65세가 돼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누가 국가 주석이 되느냐, 어떤 자리에 오르느냐보다 저에겐 가장 쓰고 싶은 소설을 써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대만문제를 둘러싸고 미중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데. 한반도 분단과 통일에 대한 생각은.

 

“대만과 중국 본토는 서로 다른 사회 제도를 가지고 있다. 대만 문제나 우크라이나 문제, 북한 문제들이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바란다. 언젠가 지혜로운 정치가가 나타나서 이런 세계적 갈등을 평화롭게 해결하기를 바란다. 모든 작가들이 사랑과 평화를 추구할 것이다. 한반도 분단문제에 이해가 깊지 않지만, 언젠가 통일이 되기를 바란다. 세계에 전쟁이 없기를, 우리 모두 평화로운 세계에 살아갈 수 있기를.”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옌롄커는 생활상 필요로 한 기관에 제출하기 위해 자신이 받은 각종 문학상의 증서 원본들을 넣어둔 원통을 손녀에 의해 버려지는 사건을 겪으면서 글쓰기의 어떤 운명 같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원통이 베이징 외곽의 쓰레기처리장에 버려져 찾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엔 낙담했다. “천사 같은 손녀가 그의 자랑과 허영을 전부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2년 뒤인 2018년, 60세 생일을 맞은 그는 홀연히 죽음을 대면하게 되고 죽음과 만나서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제가 말했습니다. ‘죽음, 잘 지냈지!’ 죽음이 말했습니다. ‘살아 있군.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이 있는 건가?’ ‘가장 쓰고 싶은 소설을 아직 쓰지 못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가장 쓰고 싶어 하는 소설이 어떤 소설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네.’ 죽음이 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습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조용히 서재로 돌아가서 네가 가장 쓰고 싶은 소설이 무엇인지, 어떻게 쓸 것인지를 잘 생각해봐. 다 쓰고 나면 내가 다시 널 부르러 올게.’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약속이 생겼습니다.”(「서면 수상소감」 중에서)

 

그는 이때 비로소 손녀가 글쓰기에서 유래한 모든 영예와 허영을 왜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는지, 원통이 어떻게 하여 베이징 교외의 쓰레기처리장까지 가게 됐는지를 깨달았다. 글쓰기의 어떤 운명 같은 것을. 만약 천국이 도서관이라면, 모든 작가의 서재는 아주 좁고 누추해서 책상 하나와 몇 권의 책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천국의 다락방이나 사랑채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다락방과 사랑채는 결코 영예의 증서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 제게는 젊은 시절의 분투와 목표가 없습니다. 생명의 마지막 구간에서의 글쓰기 속에 침묵과 무언, 미소가 있을 뿐입니다. 이제 저는 철저하게 서재로 돌아갈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제가 다투고 싸워야 하는 유일한 사람은 저 자신이고 저 자신의 펜과 원고지일 것입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은평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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