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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이 온통 어질러지면/ 혹 사특한 기운이/ 병이 되어 생민(生民)을 해치니/ 각종 사례가 한둘이 아닐세/ 조짐이 재앙으로 나타나/ 돌림병 되어 유행하네/ 옛날에도 그랬다지만/ 올해처럼 심한 해는 없었네/ 염병도 아니요 마마도 아닌 것이/ 온 세상 끝까지 덮쳤어라.” 조선 후기 문신 윤기가 무오년(1798년·정조 22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크게 유행한 독감(인플루엔자)의 실상을 그린 시의 일부다. 시문집 ‘무명자집’에 수록됐다.

그 시절에는 유행성 독감을 윤감(輪感·돌림감기) 또는 한질(寒疾)이라 불렀다. 국가적 재앙이었다. 윤기는 “중국에서 일어난 독감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열흘 만에 서울까지 번졌는데 죽은 이가 열에 두셋이나 된다”고 했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12만8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던 노론의 김종수, 남인 영수 채제공도 이때 숨졌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 “서울과 지방에서 유행병으로 전 가족이 몰사해 매장을 못하는 자가 있으면 휼전(恤典·이재민을 구제하는 특전)을 거행한다”는 ‘속대전(續大典)’ 규정을 거론하면서 “무오년 겨울에 독감이 갑자기 성했다. 그때 나는 황해도 곡산에 있었는데, 맨 먼저 매장하는 정책을 시행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올해는 2년 만에 독감 유행이 시작됐다. 방역당국은 지난주 예년보다 이른 시기에 ‘독감 유행주의보’를 발령한 데 이어 오늘부터 독감 국가예방접종을 순차적으로 시행한다. 만 13세 이하 어린이와 임신부, 만 65세 이상 고령층에게 무료로 백신을 접종한다. 대상이 아니면 일선 의료기관에서 유료로 접종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백신과 독감 백신을 동시에 맞아도 위험성이 없다고 한다.

방역당국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데다 독감이 유행하지 않은 기간에 자연 면역이 감소한 탓에 독감 유행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어제 국무회의에서 “전염병은 예방이 최선”이라며 “독감과 코로나19의 동시 유행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해 달라”고 관계 부처에 당부했다. 올겨울이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화)으로 가는 길목이 될 수 있다니 이번 고비를 잘 넘겨야 할 것이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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