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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함에 짓눌린 청년 용접공의 처절한 외침

입력 : 2022-09-03 01:00:00 수정 : 2022-09-02 22: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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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밥일지’/천현우/문학동네/1만4500원

 

“우리 모두 중소기업 돌아가는 꼴을 알기에 섣불리 장밋빛 미래는 점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아무리 힘겨워도 버텨내자. 남들이 뭐라 하건 우리 일만 열심히 하자. 개처럼 기면서 살다 보면 언젠가는 허리 펴고 사람처럼 살 수 있으리라.”(139쪽)

천현우/문학동네/1만4500원

25살이던 2015년, 어렵게 용접산업기사 자격증을 딴 뒤 첫 직장으로 한 중공업 하청업체에서 일하게 된 저자가 용접 학원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나눈 얘기다. 그렇게 열악한 근로 환경과 처우 속에서도 죽도록 개처럼 일했지만 허리 펴고 사람처럼 살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살벌한 노동강도와 최저임금에서 꿈쩍 않는 시급, 한번 당하면 생계와 생명을 위협하는 산업재해, 공장 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귀족 정직원과 천민 하청 직원 및 그 사이를 이간질하는 대기업 등 하청업체 노동자에겐 끔찍한 근로환경과 비정한 세상만 확인될 뿐이었다.

‘쇳밥일지’는 지방의 하청업체들을 전전하며 청년 용접공으로 살다 글을 쓰게 된 저자가 어린 시절부터 2022년 봄까지 자신의 삶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책이다. 부당함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쇳밥’을 먹고사는 청년 노동자의 비망록인 셈이다.

저자는 가난이 싫어 얼른 취업하려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지만, 이후 단기 아르바이트 자리나 하청업체를 전전하며 최저 시급 언저리에만 맴도는 악순환의 굴레에 갇혀버린다. 주야 교대 근무에 저당 잡힌 피폐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고, 각종 편법으로 점철된 근로 조건과 언제든 타인으로 대체 가능한 업무에 심신이 마모되는 과정이 책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학력 콤플렉스와 가난, 가시 같은 세상의 차별 등 자존감의 싹마저 시들게 하는 열등감에 연애 감정에 빠지거나 사랑 고백을 하는 것조차 엄두를 못 낸 사연은 마음을 아리게 한다.

저자가 2015년 첫 직장을 다닐 당시 남긴 SNS에는 이 시대의 청년 하청 노동자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회사는 잔업 근무자를 위한 통근 버스 따윈 없다. 휴게실도 샤워실도 열어주지 않는다. 땀에 찌든 옷을 입은 채 걸레짝이 된 몸으로 버스에 오른다. (중략)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누구도 던져주지 않는다. 세상은 그저 냉소로 화답한다. 넌 흙수저 주제에 노력도 하지 않았잖아?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나도 나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좀 행복하게 해달라는 게 그리 거창한 부탁인가?”(149쪽)

저자는 “누가 중소기업의 이런 현실을 알아줄까? 기자? 정치가? 금속노조? 진보 지식인? 아니다.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는 공론은 허상일 뿐”이라며 자신이 직접 펜을 들고 소외된 노동현장의 모습을 ‘쇳밥일지’에 기록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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