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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접촉의 마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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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13 23:29:22 수정 : 2022-07-13 23: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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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센터엔 여덟 명의 ‘커넥터’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친 교사 경험이 있는 지역의 활동가들이다. 열 명의 중도 입국한 아이들 집에 찾아가 한국어를 알려주고 부모를 만난다. 아이를 가르치는 게 주요 활동인데 거기서 그쳤다면 커넥터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과업은 외국 국적의 부모들에게 한국에서의 부모 역할, 지역 생활 정보를 알려주고 교류하는 것이다.

커넥터 선정 과정에서 질문을 받았다. “부모들은 한국말을 하냐?” 외국 국적 동포라면 말은 하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 “자기네 나라로 돌아갈지 모르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물론 서비스를 받다가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사는 동안 학교와 지역사회에만 아이를 맡기지 말고 자기가 길러야 하지 않겠냐, 그리고 구로구에서 살고 있는데 구로구 주민 누구 한 사람 답답할 때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했다. 그래서 선(先)주민과 이주민을 연결하는 커넥터라고 설명했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일주일에 두 번씩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중에 한 번씩은 퇴근하는 부모, 주로 엄마들과 만난다. 외국 국적 동포 가정이 대부분이고 귀화한 가정이 두 가정이다. 활동가들은 한국어가 서툰 엄마들과는 파파고를 두드려가며 상담한다.

어느 날부터 커넥터들의 요청이 날아들었다. 엄마 혼자 두 아이를 키우는데 센터에서는 지원해줄 게 없냐?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중국에 있다 와서 불안감이 심하고 산만한데 치료 프로그램 없냐? 아이 공부 끝나면 엄마도 30분씩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부족하다, 센터에서 배울 건 없냐? 엄마가 한국에 아는 사람 없고 우울해해서 남산도 같이 가고 시장도 같이 가니 좋아하더라, 어디 나들이 프로그램은 없냐? 뜻있는 지역의 활동가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진심일 줄은 몰랐다. 이제 내가 묻고 싶어진다. 이러다 돌아가면 어쩌려고 이러시냐.

미국에는 프로미스 네이버후드 프로그램(Promise Neighborhoods Program)이 있다. 빈곤 지역 아동의 학력 향상과 발전적인 진로를 위해 가정을 둘러싸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네크워킹하는 사업이다. 가정과 지역사회를 오가며 성과를 이끌어가는 핵심 인물이 커넥터다. 야심 차게도 우리의 커넥터는 여기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연방정부 아래 구성된 전달 체계와 엄청난 예산 같은 건 없다. 조용히 3년째 영세한 실험을 해보고 있다. 올해는 구로구가 지원해줬다. 언제까지 아이들만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고 언제까지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며 한동네에서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아니어도 아이들에겐 흡인력이 있다. 한국어가 안되는 이주민 아이들은 아이들이라 애틋했다. ‘제 부모는 돈 벌자고 일만 하는데 내가 왜 이 아이에게 정성을 들이나?’ 같은 자괴감을 없애줬다. 이주민 부모들과 커넥터의 소통이 시작된 지점이 여기일 것 같다. 부모들은 커넥터의 제안에 따라 주말에 아이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주의 서사를 논리적으로 들려줬거나 이주의 애환을 서정적으로 풀었을 리 만무하다. 서툴게 오가는 대화 사이로 보이는 삶의 모습과 현실이 보완해줬다. 접촉은 마음을 열게 하고 마음을 열고 나눈 이야기는 화학적인 변화를 가져오나 보다. 진정한 네이버후드, 커넥터에게 감사드린다.


정종운 서울 구로구가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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