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 지나치게 침해”

피고인이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법원(2심)을 건너뛰고 곧바로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비약적 상고’를 하더라도, 항소(2심의 판단을 구하는 상소)로서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의 판단이 나왔다. 기존 판례를 뒤집는 것으로, 비약적 상고를 제기한 피고인의 상소심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의미가 담겼다.
19일 전합은 강도죄 등 혐의를 받는 A에게 징역 3년 및 전자장치 부착 명령 10년 등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A는 2021년 7월 1심에서 강도죄 등 범죄사실이 전부 유죄로 인정돼 징역 3년 및 전자장치 부착 명령 10년 등이 선고됐다. A는 판결 이후 항소장이 아닌 비약적 상고장을 제출했고, 검사는 항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법원은 ‘제1심 판결에 대한 비약적 상고는 그 사건에 대한 항소가 제기된 때는 효력을 잃는다’고 규정한 형사소송법 373조에 의거해 2심 재판을 진행했다.
A는 뒤늦게 양형부담·전자장치 부착기간 과다 등을 주장하는 항소이유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2심은 피고인의 적법한 항소제기 자체가 없다고 판단, 피고인의 항소에 관한 판단은 하지 않고 검사의 항소만을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비약적 상고에 대해 항소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그러나 이번 전합의 판단은 달랐다. 피고인의 비약적 상고가 항소기간 준수 등 적법요건을 갖췄고, 피고가 1심 판결을 다툴 의사가 없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비약적 상고도 항소로서의 효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형소법에 의해 비약적 상고가 상고(대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상소)로서의 효력을 잃더라도, 상소(상고와 항소를 모두 이르는 말)로서의 효력까지 상실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전합은 “피고인의 비약적 상고에 상고의 효력이 상실되는 것을 넘어 항소로서의 효력까지도 부정된다면 피고인의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이 지나치게 침해된다”며 “피고인에게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검사의 조치로 인해 피고인은 항소심과 상고심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대부분 상실한다”고 설명했다.
검찰만 항소한 재판에서 1심 판결이 유지되면 피고인은 상고의 이익이 없어 대법원 판단을 구하지 못한다. 또 검찰이 1심 양형이 너무 적다며 항소한 것이 받아들여지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은 항소심에서 다뤄지지 않았으므로 양형부당을 사유로 상고할 수 없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종래의 판례를 변경해 하급심판결의 위법사유를 시정할 수 있는 소송당사자의 절차적 권리가 보다 확대됐다는 데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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