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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던 영국은 유라시아 전역에서 남하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극동 지역의 신흥국 일본과 동맹을 맺었다. 일본에 제국주의의 길을 열어준 동맹이다. 1904년 일본 연합함대가 중국 랴오둥반도 서남단 뤼순항의 러시아 태평양함대 주력부대를 선제공격하면서 러일전쟁이 시작됐고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해 강대국 반열에 올라섰다.

이러한 정세 변화는 국운이 기울어 국제적으로 고립된 조선의 숨통을 조였다. 1905년 2차 영·일동맹에서는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도·감리(監理) 및 보호’가 인정됐다. 미국이 주선한 포츠머스 강화조약에서는 “일본은 조선에 있어서 정치·군사·경제상의 우월권을 가지며 필요에 의해 지도·보호·감리를 행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조선은 그해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겨 사실상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했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영국을 비롯한 서양 각국은 아무 말 없이 공사관을 철수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5일 런던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원활화 협정(RAA: Reciprocal Access Agreement)’에 합의했다. 원활화 협정은 연합 군사훈련을 위해 상대국 영역에 들어갈 때 군인에 대한 비자를 면제하고 무기·탄약 등의 반입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다. 영·일 간 협정에는 양국 군부대의 공동 운용·연습·활동에 관한 사항이 담긴다. 사실상 군사동맹에 준하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경계하는 데 양국의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런 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미국(주둔군지위협정)과 호주(RAA)뿐이라고 한다.

영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영국·호주의 대중 견제 안보동맹 ‘오커스(AUKUS)’의 일원이고, 일본은 미국·인도·호주와 함께 중국 견제 핵심 기구인 ‘쿼드(Quad)’에 참여하고 있다. 향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영·일 3국 동맹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에 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그만큼 인도태평양 지역 안보질서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120년 전의 암울했던 시절을 돌아보게 한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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