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 강조하며 국가 간 갈등 상황에 모호한 태도로 손해 막아

“나는 ‘노재팬’(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기업, 국민은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입장이었다. ‘노재팬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발언으로 도마에 오른 유니클로 임원은 개인의 문제로 봤다. 논란의 ‘위안부 조롱’ 광고를 봤을 때도 한 개인의 실수이거나 무개념에서 나온 행동일 수 있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에 대한 유니클로의 공식 해명을 듣고 알았다. 의도한 것이구나. 정말 실수라면 사과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들은 ‘전혀 아니다’라면서도 사과하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쭉 ‘노유니클로’를 이어오고 있다.”
2019년 상반기까지 유니클로에서 아이 옷과 속옷을 자주 구매했던 직장인 김모(37)씨는 최근 ‘노재팬’으로 매출이 줄었던 일본 의류기업들의 회복세 소식에 이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불매운동은 개인의 자유이니 남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또 그것 때문에 한 기업이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강조하면서도 “사과 없이 논란이 잊혀지기를 바라며 어물쩍 넘어가려는 태도가 너무 실망스러워 유니클로는 계속 보이콧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서 ‘훨훨’…비결은 ‘정치 중립’?
23일 유니클로의 국내 사업을 영위하는 에프알엘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2020년 9월~2021년 8월) 매출액은 5824억원, 영업이익은 529억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은 2019년 1994억원 흑자에서 2020년 883억원 적자로 폭락했다가 다시 흑자 전환됐다.
세계 시장에서도 유니클로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2020년 미·중 면화 갈등(미국과 유럽연합이 중국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강제 노동으로 생산된 면화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며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림)으로 글로벌 의류기업들이 줄줄이 타격을 입은 중국시장에서도 유니클로는 살아남았다. 당시 나이키, H&M 등 서구 브랜드들이 신장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매출이 급감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유니클로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정치 중립’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가간 정치적 갈등 상황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유지해 손해를 줄인다는 것이다. 유니클로를 운영하는 일본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미·중 면화 갈등 당시 “우리는 늘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가고 싶다”며 신장 면화 보이콧 선언에 동참하지 않았다.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유니클로는 비슷한 전략을 취했다. 글로벌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는 가운데 야나이 회장 3월 초 “의복은 생활필수품이다. 러시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생활할 권리가 있다”며 영업을 지속했다. 하지만 비판이 이어지자 결국 지난달 러시아 사업을 일시 중단했다.
◆‘위안부 조롱’ 논란 후 2년 반…“입장 변화 없다”
한국에서는 어땠을까.
2019년 한국의 ‘노재팬’ 움직임에 야나이 회장은 “한국인을 이해한다”는 말로 중립적인 태도를 내비친 바 있다. 유니클로 임원이 “한국의 노재팬은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해 공분을 사자 닷새 만에 사과했다. 하지만 한국 소비자에 더욱 큰 충격과 상처를 안긴 위안부 조롱 논란 광고 후엔 사과하지 않았다.

해당 광고는 후리스 25주년을 기념한 글로벌 시리즈로 98세 패션 컬렉터와 13세인 패션 디자이너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이다. 광고에서 소녀가 “스타일이 완전 좋은데요.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나요?”라고 묻자, 노인은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고 답한다. 영어로는 “그렇게 오래 전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I can't remember that far back)”고 말했지만 국내에서만 ‘80년’을 넣어 의역한 것이다.
80년 전(1939년)은 한국 여성들이 일제 강점기 위안부에 끌려갔던 시기였다. 한국 광고에서만 이런 자막을 달았다는 점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롯한 일제 전범 피해자들을 조롱한 것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유니클로는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최근 방영된 광고 관련 루머에 대해 해당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힌다”며 제기된 비판을 ‘루머’라고 표현했다. 또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사안, 신념 및 단체와 연관관계도 없다. ‘80년’이라는 표현도 둘의 나이 차를 고려한 자막일 뿐 역사적인 배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광고를 내렸다.
하지만 사과의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분들께서 불편함을 느끼신 부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표현했을 뿐이다.
이런 대응이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으면서 유니클로는 국내 수십개 점포 문을 닫고 영업이익이 1년 만에 약 2800억원 급감하는 등 심각한 타격을 입어야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도 컸지만 광고 논란에 대한 반발 충격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2년 반이 지난 현재, 유니클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매출을 회복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세계일보는 23일 한국 유니클로에 사과 여부를 다시 문의했다. 혹시 비판 여론 후 사과했지만 언론에서 제대로 다루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간 건 아닐까 싶어서다. 이에 유니클로측은 2019년 해명과 같은 내용을 다시 보내며 “입장 변화는 없다”고 밝혔다. 사과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롱할 의도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본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잊고 다시 찾겠지…버티기 전략”
그간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던 유니클로로서는 사과가 부담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자칫 강제 징용과 위안부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 입장과 반대되는 것으로 비쳐 일본 내 반발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고가 의도된 것이라면 매우 정치적인 데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국민 정서를 고려하지 못하고 아픈 역사를 건드린 것은 명백한 잘못이란 점에서 사과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장인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의도가 없었더라도 오해를 줬다면 ‘불편을 드려서 죄송하다’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여전히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면서 “이 문제의 최고 책임자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계속 시간을 끌면서 ‘제품이 괜찮으면 소비자들이 논란을 잊고 돌아올 것’이라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태도 변화 없이는 용서도 없다’며 불매운동을 지속하겠다는 의견이 여전히 적지 않다.
이전엔 종종 유니클로 옷을 구입했으나 광고 논란 이후 단 한번도 사지 않았다는 회사원 성모(40)씨는 “글로벌 기업은 정치적 중립이 중요한데 유니클로가 보인 태도는 매우 정치 편향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개선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해 계속 사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이모(38)씨도 “민간기업이 사업을 영위할 때는 기본적인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유니클로는 그러지 않았다”고 불매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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