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은둔의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가 하늘에서 건반을 치러 떠났다. 향년 77세.
루마니아 에네스쿠 국제 페스티벌과 루푸 대리인은 오랜 지병을 앓아온 그가 지난 17일 저녁(현지 시간) 스위스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고 18일 발표했다.
1945년 루마니아 갈라티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태어난 루푸는 12살 때 자작곡 리사이틀로 데뷔한 후 전설적인 스승들을 사사했다. 요절한 천재 피아니스트 디누 리파티를 가르쳤던 플로리카 무지체스쿠와 첼라 델라브란체아 등에게서 배웠다. 모스크바음악원에 유학하고 1966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와 이듬해 루마니아 에네스쿠 콩쿠르, 1969년 영국 리즈 콩쿠르를 석권하면서 세계적 스타가 됐다. 영성이 실린 듯 사색적이고 섬세한 연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온 그는 특히 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에 대한 해석이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루푸는 전 세계에서 만나거나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요구가 쇄도했지만 음악에만 집중하는 길을 택했다. 무대에 서거나 음반 녹음을 할 때를 빼고 언론 인터뷰 등 대외 활동을 극도로 꺼렸다. 2010년 갑작스러운 건강악화로 공연 1주일 전 취소된 내한 공연이 2년 뒤 다시 열렸을 때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고 공연장 외 숙소 밖을 나서지 않았다. 내한 당시 독주는 슈베르트 곡을, 협주는 베토벤 곡을 들려줬다.
루푸는 공연을 준비할 때만큼은 완벽주의자처럼 까딸스럽기도 하지만 동료나 후배 연주자 등에게 따뜻했다고 한다.
루푸 공연을 몇 차례 보고, 정경화에게 부탁해 그 앞에서 연주한 적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하늘에서 신이 피아노를 치는 것 같았다. 신에게 레슨 받는 기분이었다”며 루푸에 대한 무한한 존경을 내비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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