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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도락’에 인문학 한 스푼… ‘맛있는 역사’ 즐겨볼까

입력 : 2022-02-12 01:00:00 수정 : 2022-02-11 19: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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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 때부터 식당·술집 즐비
17C 루이 14세, 요리 신격화 추진
佛 혁명에 실직한 귀족家 셰프들
파리서 고급 레스토랑 문화 생산
외식 사업화로 평론가 역할 주목
인류사 통해 ‘음식의 미학’ 정리
20세기 음식사가 장 루이 플랑드랭의 말처럼 식문화는 그 시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림에는 두 개의 사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앞 테이블 평민들이 빵과 술을 먹고 마시면서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사이, 뒤편의 상류층 엘리트들은 테이블에 고정된 자세로 정찬을 먹고 있다. 헬스레터 제공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새로운 별의 발견보다도 인류의 행복에 한층 더 공헌한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미식가인 브리어 사바랭의 말처럼 따뜻한 한 끼 식사는 배를 부르게 하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맛있는 요리에는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와 사랑이 담겨 있다. 어디서 무엇을 먹는지는 그의 일생과 다름없고, 음식에 대한 탐미와 탐구는 삶에 관한 호기심의 발현이다. 이처럼 먹는 것에 대한 기록을 톺아보며, 인류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신간 두 권이 나왔다.

영국 음식작가 윌리엄 시트웰의 ‘외식의 역사’는 고대 로마부터 오늘날 완전 채식주의에 이르기까지 2000년 넘는 인류의 외식문화 변천사를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고대 폼페이의 식문화에서 로마 제국의 흥망성쇠를 발견한다. 폼페이 중심가인 델라본단자 거리에는 레스토랑과 술집이 즐비했다. 로마인들은 이곳에서 파티를 열었고, 네로 황제도 즐겨 찾았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레스토랑과 숙박을 겸한 시설에서 피자와 와인을 즐겼다.

윌리엄 시트웰/문희경/소소의책/2만8000원

아울러 책은 옛 이슬람 세계를 여행한 이븐 바투타의 기록에서 접대 문화와 풍습을 엿보고, 피로 얼룩진 프랑스혁명 기간에 어떻게 고급 레스토랑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는지를 면밀히 얘기한다. 프랑스혁명은 고급 레스토랑을 크게 늘렸다. 귀족의 저택에서 음식을 만들어주다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요리사들은 집사·하녀들과 함께 파리로 몰려가 레스토랑을 열었다. 고급 레스토랑을 옮겨 다니며 맛과 식사예절에 정통한 부르주아 미식가들이 이때 생겨났다.

요리사 모자를 만들고 음식을 차례로 차려내는 오늘날 코스 방식을 개발한 마리 앙투안 카렘, 타코 기계를 발명해 패스트푸드 열풍을 일으킨 후벤시오 말도나도, 초밥 컨베이어벨트를 개발한 시라이시 요시아키 등은 외식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외식이 점점 사업화의 길로 접어들면서 레스토랑 홍보와 음식 평론가 집단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앨런 크롬튼 배트는 요리사를 ‘불 앞의 노예’에서 ‘스타’로 승격시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1980년대에 그는 많은 레스토랑과 요리사를 언론에 홍보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이렇게 레스토랑을 홍보하고 평가하는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미슐랭, 고미요 등과 같은 레스토랑 가이드가 등장했다. 이러한 가운데 2003년 프랑스의 유명 요리사였던 베르나르 루아조는 쏟아지는 혹평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늘날 셰프의 요리는 예술로 승화했지만, 미슐랭 가이드로 대표되는 권력 앞에서는 더 높은 별점을 얻기 위한 무한경쟁만 남는다.

이외에도 지구와 인간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만들어낸 완전 채식주의, 테이블 하나에 자리가 열두 개뿐인 ‘세계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 등에 관한 이야기는 음식 이야기를 뛰어넘어 다면적 시각으로 외식문화와 레스토랑의 사회문화적 변천사를 읽게 해준다.

저자는 “레스토랑이 레저산업에 편입되는 사이 레스토랑의 존재 이유가 제대로 정의되지 않았다”며 한 평론가의 말을 빌려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레스토랑에 가는 이유는 식욕이 있어서이고, 식욕은 배고픔과 다르다.”

김복래/헬스레터/3만4800원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나라는 역시 프랑스. ‘미식(美食)의 나라’ 프랑스의 ‘가스트로노미(gastronomie·좋은 음식)’에 대해 정리한 책도 있다. 국립안동대 김복래 교수가 쓴 ‘미식 인문학’이다. 책은 중세부터 르네상스기, 앙시앵레짐, 프랑스혁명기, 현대까지 연대기별로 미식이 어떻게 진전해 왔는지 역사적·사회경제사적 관점에서 살핀다. 한국의 학자가 방대한 프랑스 미식 인문학서를 직접 집필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프랑스에서 식탁은 하나의 예술이고, 식탁 예술은 하나의 문화이다. 유네스코는 ‘프랑스 미식’을 2010년 인류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정도.

17세기 부르봉 왕조의 절대 권력을 거머쥔 루이 14세는 위대한 프랑스 요리전통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고급요리인 오트 퀴진을 주창하며 ‘요리의 신격화’의 기둥을 하나씩 건설한다. 같은 시각, 요리의 대가들은 음식의 오묘한 맛과 색, 멋진 장식을 위해 끝없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프랑스가 식탁 예술과 요리 국가가 되는 과정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잘 먹는 것과 잘 마시는 것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유별한 집착과 집요한 숭배 문화는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풍요로운 자연 유산에서 출발한다. 특히 프랑스혁명이 가져온 미식의 탄생과 레스토랑 문화로 미식은 황금기를 맞게 된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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