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사 월급 200만 원.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은 공약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지난달 9일 ‘병사 봉급 월 200만 원’이라는 한 줄 공약을 냈다. 집권하면 예산을 편성해 단기간 내 지급할 태세다.
윤 후보측은 “현재 2조1000억 원인 급여 예산에서 5조1000억 원이 추가된다”며 재원은 예산지출조정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난해 12월 24일 “최저임금제에 맞춰 급여를 단계적으로 인상하겠다”며 2027년에는 병사 월급 200만 원 이상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대선 지지율 1, 2위 후보가 공통적으로 병사 월급 200만 원을 공약하면서, 다음달 대선을 거쳐 출범할 정부에서는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병사 월급이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의무’에서 ‘보상’으로…실현까진 난제 많아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윤 후보와 이 후보가 병사 월급 200만 원 공약을 제시한 것은 병역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그만큼 변화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6.25 전쟁 이후 오랜 기간 군복무는 국민이 이행해야 할 ‘의무’였다. 병사로 입대한 청년들은 최저임금보다 훨씬 낮은 급여와 열악한 급식에 직면했지만, 불만이 외부로 표출되는 사례는 적었다. ‘의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청년들이 사회와 단절된 채 군복무를 하는 동안 사회는 빠르게 변화했다. 군복무를 마친 청년들은 급속히 전개된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심리적 박탈감을 느꼈다.
1999년 군 가산점 위헌 판결은 이같은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국가를 위해 희생했으니 보상을 해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병역을 바라보는 시각이 ‘의무’에서 ‘보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군가산점 제도가 무력화된 상황에서 주목받은 대안은 급여 인상이었다. 병사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는 방안을 여야가 공약으로 채택한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애국심만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나가기는 어려운 시대”라며 “어떤 형태든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병사 월급을 200만 원으로 인상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현재 한국군 병사 규모는 약 30만 명. 올해 월급은 51만 100원~67만 6100원으로 설정되어 있다. 월급을 3~4배 인상해야 200만 원이 된다.
오는 2026년에 병장 기준으로 99만1800원의 월급을 지급하겠다는 국방부 방침을 기준으로 해도 두 배의 인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 예산지출조정을 통한 재원 마련이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역차별 논란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군대는 병사로만 구성된 조직이 아니다. 부사관과 장교, 군무원도 있다.

단기간 내 병사 월급 인상에만 초점을 맞추면 병사와 연령대가 비슷한 초급 부사관과 장교의 불만이 높아진다.
올해 기준으로 부사관인 하사 1호봉은 170만5400원, 중사 1호봉은 179만1100원, 장교인 소위 1호봉은 175만5500원, 중위 1호봉은 192만900원이다. 내년에 병사 월급만 200만 원으로 인상하면, 초급 간부가 병사보다 적은 급여를 받을 수도 있다.
간부에게 지급되는 각종 수당을 고려하면 소득 역전 현상이 실제 발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기본급이 병사보다 낮으면 간부 지원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결국 병사 월급 인상과 더불어 간부의 기본급도 올려야 한다. 국방예산에서 의무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의 비중도 높아진다.
한정된 국방예산 속에서 인건비의 상승은 방위력개선비 증액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북한 위협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에서 전력증강 예산이 줄어드는 것은 적절치 않다.
국방비를 순증해 대처하는 방안이 있지만, 코로나19 대응과 복지 등에 지출하는 예산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충분한 규모의 증액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적정 군 규모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군 전력증강 사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병사 월급을 200만 원으로 빠르게 인상할 방법으로는 증세 또는 병사 규모 감축이 거론된다.
군에 입대한 청년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들이자 형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무기를 지닌 채 훈련을 받는다. 적지 않은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심리적, 육체적으로 힘든 복무 환경 속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청년들에게 국가 재정 지출의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윤 후보의 주장은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국민적 호응이 있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증세를 할 수 있다. 병사 월급을 200만 원으로 인상한다면 청년들은 군복무를 통해 최소한의 자산을 형성, 사회 진출을 준비할 수 있다. 적절한 보상을 통해 군복무가 희생이 아닌 헌신으로 자리잡게 되는 결과도 생긴다.
증세가 어렵다면, 적정 군 규모에 대한 고민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병사 월급을 인상하되 병사의 규모는 대폭 줄여 인건비 상승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후보는 차기 정부 임기 말인 2027년까지 병사 규모를 현재의 절반인 15만 명으로 줄인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대신 병사 급여는 단계적으로 인상해 2027년부터 월 200만 원으로 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의 병사 규모를 유지하면서 월 200만 원을 지급하는 것보다는 재정 지출이 적다는 평가다.
다만 병사의 수를 얼마나 줄여야 할지는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사 규모는 군의 작전과 전략 개념, 병역 자원 감소, 병역 제도 등과 관련이 있는 예민한 이슈다.

병역과 관련해서는 모병제 도입 필요성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군이 무인화, 첨단화되고 있지만 병사의 역할을 100%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병역 자원 감소는 가장 큰 문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인력 연구센터 조관호 박사의 ‘미래 병력운용과 병역제도의 고민’ 자료에 따르면 20세 남자는 2020년 33만 명에서 2025년 23만 명, 2040년 13만5000 명으로 감소한다. 병력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에 대비, 적정 군 규모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군복무가 학업이나 경력 단절, 사회 진출 지연 등 개인적 희생과 손실이 있는 만큼 월급 대폭 인상을 비롯한 보상을 강화하자는 것에는 공감대가 있다.
다만 병사 월급의 급격한 인상은 군 조직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미래의 재원 마련, 적정 병사 규모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이는 병사들의 기대를 섣불리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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