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수명 25∼30년… 평균 6세에 경주마 은퇴
퇴역 이후 40%만 ‘재활용’… 절반가량은 도축

은퇴한 경주마 ‘까미’의 죽음은 두달만에야 세상에 알려졌다.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 촬영 현장에서 낙마 장면을 위해 강제로 넘어지는 바람에 목이 고꾸라진 까미 모습이 지난 19일 공개되면서다. 동물 학대 의혹이 제기되자 KBS 측은 지난해 11월 2일 드라마 촬영 이후 일주일 뒤 까미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동물자유연대는 까미의 나이를 5~6세로 추정했다. 말의 평균 수명이 25~30년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람 나이로는 30~40대에 세상을 떠난 셈이다. 동물보호단체들은 까미가 4~5세까지 경주마 생활을 한 뒤, 지난해 말 대여업체로 이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까미는 퇴역 경주마의 현실을 보여준다. 말은 성장 속도가 빠른 동물이다. 생후 6개월만에 성인 말의 크기에 80% 이상 근접한다. 18개월이 지나면 육안으로는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2세가 되면 경주마가 되기 위한 훈련을 시작하는데, 기수와 친해지고 각종 장구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운다.
경주마로서의 마생(馬生)이 시작되는 것은 3살 전후다. 청년기인 4~5세는 운동 능력이 정점을 찍는 시기다. 전성기가 지나고 6세가 되면 장년기가 찾아온다. 이때 대부분의 경주마가 은퇴한다. 매년 1400마리 이상의 말이 경마장을 떠난다. 드물게 롱런하는 경우도 있다. 101전 101패로 한국 경마 사상 최다 연패 기록을 세운 ‘차밍걸’은 2013년 8세의 나이로 은퇴했다.
한국마사회 등에 따르면 퇴역마 중 42.2%만 관상, 교육, 번식, 승용 등 다른 용도로 ‘재활용’된다. 드라마 촬영 이후 목숨을 잃은 까미도 그 중 하나다. 차라리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은퇴 이후 살아남는 경주마는 채 절반이 되지 않는다. 무조건 빠르게 달리는 연습만 반복한 경주마를 다시 교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48.1%는 질병 및 부상 등의 이유로 도축된다.
아예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마사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주마 가운데 퇴역 이후 정확한 용도가 파악되지 않는 ‘기타용도’ 비율이 2016년 5.0%에서 2017년 6.4%, 2018년 7.1%, 2019년 7.4%, 2020년 22.5%로 급증했다. 숫자로 따지면 2020년에만 퇴역 경주마 308마리의 행방이 묘연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으로 도축됐거나 사적 용도로 매매됐을 것으로 동물보호단체들은 보고 있다.
동물자유연대 등은 지난 22일 성명을 통해 “경주마 퇴사 시 신고 기준의 정확성은 낮고 용도 변경 추적 관리는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경주마의 전 생애 복지 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연매출 8조원의 한국마사회 역시 은퇴한 경주마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