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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연평도 ‘포격전’에 담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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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6 22:54:28 수정 : 2021-11-26 22:5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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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쟁 났어. 빨리 집에 들어와.”

2010년 11월23일. 아버지의 다급한 전화에 뉴스를 찾아봤다. 북한의 무차별 포 공격에 연평도가 화염에 휩싸인 모습이 보였다. 전쟁이 난 줄 알았다. 조부모와 부모 세대가 겪었던 전쟁이 우리 땅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생각에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뉴스 소식이 더해지면서 전쟁으로는 비화하지 않았지만, 연평도를 사수하던 해병대 연평부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전사 소식도 들려왔다. 연평도 포격전은 북한의 포격에 우리가 일방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건으로 그렇게 내 기억 속에 남았다.

구윤모 외교안보부 기자

지난 11월23일 ‘연평도 포격전 11주년 전투영웅 추모식 및 전승기념식’이 열렸다. 연례 행사이지만 올해는 큰 변화가 있었다. 행사의 공식명칭 변경이 눈에 띄었다. 연평도 ‘포격도발’이 ‘포격전’으로 변경되고, ‘전승기념식’이 포함됐다. 북한의 기습적인 공격에 우리 군이 맞서 싸워 이긴 전투라는 의미가 담겼다.

연평도 포격도발의 기억이 강한 국민이라면 이번 변화가 의아할 수 있다. 당시 우리 군의 용감한 대응과 공적은 연평도 포격전을 승전으로 기억하기에 충분했다. 북한은 그때 연평도 민간시설을 포함한 군부대시설을 향해 약 12분간 150여발의 포격을 가했다. 북한의 1차 포 사격이 끝나고 1분 후 우리 군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북한군 무도 포진지에 K-9 자주포 50발을 퍼부었다. 이후 북한이 연평부대 주둔지 일대에 20여발을 추가로 포격하자 우리 군도 개머리 포진지에 30발의 추가 대응사격을 했다.

양측 포탄의 파괴력을 비교했을 때 북한 측의 피해가 훨씬 컸을 것은 자명했다. 공식적인 기록은 없으나 우리 군의 공격으로 북한군은 4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입장에서는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연평도 포격전을 언급하면서 “원수의 총탄에 피 흘리며 쓰러진 병사”라고 표현하며 피해가 컸음을 인정했다.

이번 명칭 변경에 불만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도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북한의 잘못을 부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연평도 포격전의 도발 주체가 북한이라는 점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포격전’으로 바뀐다고 해서 북한의 도발행위가 감춰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심지어 연평도 포격전을 승리한 전투라고 자평한다. 북한이 자신들의 도발을 인정하고 사과할 리도 없다. 우리도 연평도 포격전을 승전의 역사로 기록해 참전장병들과 우리 군의 긍지를 높이는 편이 훨씬 낫다.

기록은 역사를 바꾼다. 연평도 포격도발이 포격전으로 바뀐 것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역사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번 조치로 연평도는 더 이상 북한의 무력도발 피해 지역이 아닌, 승전의 자부심이 깃든 역사의 현장으로 거듭나게 됐다.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비롯한 참전장병들 역시 연평도 포격전을 승리로 이끈 ‘전투영웅’으로 역사에 기억될 것이다.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전에서 우리 군은 승리했다.


구윤모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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