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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서 쌓은 인지도로 '가수 부캐'… 무임승차 논란도 [이슈 속으로]

입력 : 2021-10-10 10:00:00 수정 : 2021-10-10 09:4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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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장르 간 장벽 파괴 가속

‘무한도전’ 이후 가요계 데뷔 잠시 주춤
2019년 유재석 ‘유산슬’ 이후 재점화
최근 문세윤·정준하 등 가세 관심 키워

‘부캐’로 활동… 기존 인지도 강점 작용
음악방송 출연 등 신인과 형평성 논란
일각선 특혜 등 형평성 지적 목소리도

‘새로움 추구’ 요즘 세태 그대로 반영
전문가들 “대중 관심 끄는 화제성 집중
자칫 기회 공정성 차원 박탈감 우려 커”
KBS 2TV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송 화면 캡처

지난 8월 22일 A가 싱글앨범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도전장을 던졌다. A는 가창력이 뛰어나거나 외모가 출중한 편은 아니었다. 더욱이 가요계는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지속으로 최악의 상황. 이제 갓 데뷔한 신인가수 A에게는 더욱 힘든 여건이었다. 그러다 보니 A는 한 해 수천 명이 데뷔하고 컴백하고 활동하는 가요계에서 그저그런 가수로 스쳐 지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신인가수라면 단 한 번이라도 서길 꿈꾸는 지상파 음악 순위프로그램에, 그것도 두 번이나 출연했다. 예능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신인가수로는 상당히 파격적이다.그런데도 A의 이러한 행보가 가능했던 것은 그가 단순히 ‘이제 갓 데뷔한 신인가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A는 2001년에 데뷔한 개그맨이자 배우, 뮤지컬배우로 맹활약 중인 문세윤이다. 문세윤이 부캐 ‘부끄뚱’을 만들어 그 이름으로 노래를 낸 것이다

 

문세윤과 같이 비(非)가수가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미는 현상은 몇 해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예능프로그램 소재의 하나로 노래를 불렀다면, 요즘에는 본인 이름이 아닌 별도 활동명을 내걸고 정식 가수로 데뷔하고 있다. 장르도 트로트나 발라드에서 댄스, 힙합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본격적인 비가수 방송인들의 가요계 러시다.

다만 문제는 이들이 가요계 신인이지만 방송계에선 신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각자 방송계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고, 고정출연하는 프로그램까지 있다. 그러다 보니 신인이지만 신인 같지 않은 대우, 즉 다른 신인 가수에게는 ‘특혜’로 보일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있다. 더불어 자신이 고정출연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노래를 홍보까지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가요계가 아닌 곳에서 쌓은 인지도를 이용해 가요계에 ‘무임승차’해 가요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끄뚱·MC민지 등 비(非)가수, 가요계 러시

비(非)가수들의 가요계 러시는 MBC ‘무한도전’ 가요제를 통해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무한도전 측은 2007년 강변북로 가요제를 시작으로 올림픽대로 듀엣가요제(2009),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2011), 자유로 가요제(2013), 영동고속도로 가요제(2015)까지 5번의 가요제를 진행했다. 가요제에서 공개된 노래는 음원차트에서 상위권을 기록했다.

무한도전 이후 비가수들의 가요계 도전은 잠시 주춤했으나, 2019년 11월 MBC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부캐 ‘유산슬’로 트로트계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다시 본격화됐다. 개그맨 김신영이 둘째이모 ‘김다비’란 이름으로 지난해 5월 트로트 앨범을 내놨다.

유산슬. MBC제공

개그맨 이창호와 곽범이 각각 제이호, 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2인조 남성 듀오 ‘매드몬스터’도 지난 6월 ‘내 루돌프’, 7월 ‘다시 만난 누난 예뻐’를 발표했다. 해당 노래들은 음원차트에서 상위권까지 차지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배우 라미란과 래퍼 미란이는 힙합 듀오를 결성, 지난 6월 ‘라미란이’를 발표했다. 같은 달 개그맨 김원효와 이상훈이 결성한 남성 듀오 ‘다비쳐’도 ‘핫 쿨 섹시(HOT COOL SEXY)’를 발매했다.

개그맨 정준하는 지난 6월 싱글앨범 ‘I say woo! (아새우!)’로 가수로 데뷔했다. 활동명은 ‘MC민지’. MC민지는 2016년 MBC ‘무한도전’의 ‘영동고속도로 가요제’에 출전하며 만든 이름이다. 7월에는 보이비, 행주, 시도(Xydo), 지구인과 함께 ‘I say woo! (Remix)’를 발매했다.

앞서 언급한 문세윤은 지난 8월 22일 부캐 ‘부끄뚱’이란 이름으로 라비와 호흡을 맞춘 ‘은근히 낯가려요’를 발표했다. ‘은근히 낯가려요’는 낯을 가려 인간관계가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문세윤과 함께 KBS2 ‘1박2일’에 고정멤버로 출연 중인 라비가 문세윤의 버킷리스트를 이뤄 주기 위해 직접 제작했다.

KBS 2TV '1박2일' 방송 화면 캡처

◆인지도 이용해 방송 출연…무임승차·특혜 논란 나와

무한도전 때와 요즘 비가수의 가요계 잇단 진출에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당시에는 출연자들이 예능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노래를 발표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비가수들이 활동명(부캐)으로 데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래에 임하는 자세가 다른 것은 물론이고 노래 장르도 다양해졌다. 정식 가수로 데뷔한 것이기 때문에 노래의 질도 좋아졌다.

다만 이들이 가요계가 아닌 다른 곳에서 쌓은 인지도를 자신의 노래를 홍보하는 데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서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아이돌 가수는 기획사 오디션을 본 뒤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다. 그 기간이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이 넘을 수도 있다. 데뷔조에 뽑혀 가수가 됐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한 해 데뷔하고 컴백하는 가수들이 수천 명에 달한다. 이들 사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음악 순위프로그램에 얼굴을 내밀 수 있다. 신인가수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초대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하지만 비가수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곡이 잘 만들어져 매력적인 것도 아니고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닌데도, 단지 기존인지도 때문에 음악 순위프로그램은 물론이고 예능프로그램에까지 출연하고 있다. 더욱이 고정으로 출연 중인 프로그램에 자신의 노래를 홍보하는 비가수도 있다. 예컨대 문세윤은 부끄뚱으로 데뷔한 지 5일 만인 8월 27일 KBS2 ‘뮤직뱅크’, 28일 MBC ‘쇼! 음악중심’에 출연했다. 지난달 17일에는 KBS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도 무대를 선보였다. 더욱이 문세윤은 자신이 고정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 신곡을 홍보했다. tvN ‘놀라운 토요일’(8월28일)과 tvN ‘코미디 빅리그’· KBS2 ‘1박2일 시즌4’(8월29일)에서다. 특히 ‘1박2일 시즌4’에서는 ‘초대가수’로 초대됐다.

KBS1 ‘아침마당' 방송화면 캡처

정준하도 ‘MC민지’란 이름으로 SBS ‘인기가요’·KBS2 ‘뮤직뱅크’·MBC ‘쇼! 음악중심’까지 지상파 3사 음악 순위프로그램에 모두 출연한 데 이어 MBC every1 ‘대한외국인’, JTBC ‘아는 형님’, MBC every1 ‘쇼! 챔피언’, KBS1 ‘아침마당’, Mnet ‘쇼미더머니 더 히스토리’ 등에 출연했다. 지난달 10일 비대면 녹화방송으로 진행된 제48회 한국방송대상 시상식에서 수상자도 발표했다.

이에 일부에서는 ‘무임승차’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 기획사 대표는 “신인가수가 방송에 나가기 위해서는 담당 PD를 수차례 만나 읍소하고 홍보해도 겨우 될까 말까 할 정도로 힘들다”며 “하지만 이들은 기존 인지도를 이용해 방송 생태계를 교란하고, 고정 프로그램에까지 자신의 노래를 홍보하는 ‘무임승차’를 서슴지 않고 자행한다”고 말했다.

홍대 등에서 밴드를 운영 중인 한 가수는 “가요계가 아닌 곳에서 인지도가 있던 사람이 노래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며 “노래라도 잘 부르거나 곡을 잘 만들었으면 이러한 논란도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1990년대부터 활동 중인 한 가수는 “수년 동안 가수 데뷔만을 바라보고 준비하던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까 우려된다”며 “가수 준비도 안 된 사람들까지 무분별하게 도전해 가수가 희화화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장르 파괴 가속…다른 신인가수들 박탈감 느낄 수 있어”

전문가들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요즘 세태가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다. 김헌식 대중음악평론가는 “엔터테인먼트 관점에서는 언제나 ‘의외의 신선함’을 추구해 왔다”며 “비가수들의 가요계 러시는 대중의 관심을 끄는 화제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가수가 연기하고, 배우가 노래를 부르는 등 장르 간 장벽 파괴가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특히 K팝의 인기와 더불어 음악시장이 성장하면서 연예인들의 가요계 도전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의 도전으로 기존 가요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헌식 평론가는 “비가수들의 잦은 방송 출연은 그런 기회조차 갖기 어려운 신인가수들에게 불평등, 불합리로 다가올 수 있다”며 “기회의 공정성 차원에서, (비가수들이) 유명하다는 이유로 음악방송 출연 기회를 더 주는 혜택을 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도 “비가수들이 다양한 프로그램 출연하는 것은 다른 신인가수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가수 데뷔를 위해 수년 동안 단계를 밟으면 노력하던 신인들이 박탈감을 느낄 수 있으며 그 기회조차 잃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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