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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조작보도 기준 불분명… 5배 징벌적 손배도 유례 없어 [與, 언론중재법 강행]

입력 : 2021-08-19 18:30:22 수정 : 2021-08-19 18:4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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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 곳곳 독소조항

과실 의한 경우까지 포함 ‘과잉 규제’
언론사가 과실없음 증명은 민법 위배
학계·시민단체 “언론 자기 검열 심화
비판 보도 봉쇄 위한 소송 남발 초래”
野 “언론의 정권비판 원천봉쇄 의도”
野 반대 속 표결 처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이달곤 의원(오른쪽)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 추진에 반대하며 도종환 문체위원장(왼쪽)의 회의 진행을 막고 있다. 남정탁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언론중재법)은 언론사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한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고의·중과실’, ‘허위·조작 보도’ 개념이 불분명하게 규정돼 자의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계와 시민단체에서도 언론의 자기 검열이 심화하고 비판 보도를 봉쇄하기 위한 소송 남발을 초래하는 등 언론 자유가 대폭 위축될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날 문체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언론중재법은 제30조의2 1항에서 언론 등이 명백한 고의·중대한 과실로 허위·조작보도를 해 재산상 손해를 입히거나 당사자의 인격권을 침해 또는 정신적 고통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법원은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문제는 우선 ‘고의·중과실’과 ‘허위·조작 보도’ 개념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고의·중과실 인정 여부에 대해 개정안은 △보복·반복적 허위·조작 보도로 피해 유발 △허위·조작보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초래 △정정보도·추후보도가 있는 내용을 검증 절차 없이 복제·인용 △기사의 본질적 내용과 다르게 제목·시각자료를 조합해 왜곡 등 4가지를 기준으로 정했다. 당초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은 6개에서 지난 18일 문체위 안건조정위원회 심의 과정을 거치며 4개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고의·중과실의 근거가 되는 허위·조작 여부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라, 애매한 성격을 이용해 정치·경제 권력이 비판 기사에 ‘허위 보도’ 프레임을 씌우는 독소조항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비판 보도를 봉쇄하기 위해 소송을 남발할 가능성도 있다.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로만 규정하고 있다.

또한 당장 증명이 어려워 허위로 받아들여진 정보라 해도 추후 권력구조 개편 등 외부 환경이 변하면서 진실로 드러난 사례도 많다. ‘허위성’만을 이유로 함부로 징벌·단죄하면 안 된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이유다.

 

부주의에 의한 실수, 즉 과실에 의한 경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에 포함한 것도 과잉규제로 지적된다. 가짜라는 것을 명백히 인지하고 조작한 게 아니라, 취재원의 일방 주장에 경도되거나 확실한 증거 없이 공표했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건 비례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즉 큰 잘못에 큰 책임을 묻고, 실수에는 견책하는 상식적 수준의 처벌이 아니라 과도한 규제라는 얘기다.

또한 개정안은 소송이 발생하면 고의가 아니라는 것을 언론이 입증하도록 했는데, 이는 민법상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해당 사실을 입증하게 한 법률의 기본 원칙과 배치된다. 민법의 대원칙을 무시한 조항으로서 언론을 불리한 법적 지위로 내몰면서 소송 남발을 유도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구나 포털 등 뉴스 매개자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해 뉴스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에서도 전방위적으로 자기 검열이 심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개정안은 ‘악의적 가짜뉴스’ 피해자를 보호한다는 취지로 기사 열람 차단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보도’는 이러한 청구권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열람 차단 청구 대상 범위가 너무 넓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대로라면 개인에 대한 모든 비판적 보도는 열람 차단 청구 대상이 될 수 있다. 반면 현행 언론중재법은 정정·반론·추후보도 청구를 통해 문제가 된 기사에 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확인된 사실관계와 다른 주장 등 이견을 덧붙이게 한다.

야권과 언론·시민사회계에선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한 판정 기준 등이 모호해 ‘언론 길들이기 입법’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에서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구제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진짜 목적은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해 정권비판 보도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데 있음을 누구나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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