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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미를 깨치려면 사유하라 [박영순의 커피언어]

입력 : 2021-07-31 19:00:00 수정 : 2021-07-31 11: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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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커피 전문가들이 참여해 2016년 개발된 플레이버 휠. 커피의 향미를 소통하는 공용어처럼 활용되고 있다.

단지 각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향미를 감상하기 위해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와인처럼 맛을 감상하고 나아가 그 느낌을 구체적인 낱말로 묘사하는 모습이 주변에서 잦아지고 있다. 맛으로 커피의 품질을 평가하는 커피 테이스터(coffee taster)들은 한 잔의 커피에서 감지되는 수많은 향미를 이야기하며 공감을 형성해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커피의 가치라고 말한다.

향미 공부는 되도록 다양한 향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맛과 향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표현하기는커녕 알아챌 수조차 없는 탓이다. 한자리에 다양한 식음료를 준비하기 쉽지 않고, 더욱이 여러 향이 섞이면 순수한 상태를 지각하기 어려우니 아로마 키트를 사용한다. 커피에서는 전통적으로 콜롬비아커피생산자연합회(FNC)가 프랑스 와인 전문가들에게 주문해 1997년 개발한 ‘르네뒤카페’가 애용된다. 36가지의 향을 경험할 수 있는 이 키트를 반복적으로 사용해 커피에서 유사한 향이 피어날 때 알아챌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커피에서 발산되는 향기 물질은 800~1000종에 달한다. 따라서 ‘36가지 향만을 훈련해 커피 속의 수많은 향을 체득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 만하다. 이에 따라 100여종의 향을 담아 비싸게 파는 키트들도 나왔는데, 굳이 큰돈을 쓸 필요는 없다. 커피에서 비롯되는 향들을 대략 9개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구별 원리를 일상에서 섭취하는 식음료에 하나둘 적용해 나가는 것으로도 족하다.

우리는 향과 맛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DNA를 가지고 있다. 향미전문가들이 다른 점은 섭취할 때마다 그것의 향미가 어떤지, 내 몸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아가 그 향미가 내 정서의 어느 구석을 보듬어 어떤 감정을 들게 하는지 살피며 사유할 뿐이다. 그러한 자질은 우리의 DNA에 들어 있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84가지의 향미 속성을 색상환처럼 만든 플레이버 휠(flavor wheel)을 보면서 단어를 구사하는 연습을 하면 더욱 좋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데이비스(UC Davis)가 월드커피리서치(World Coffee Research)와 함께 세계 커피 향미전문가 72명을 참여시켜 개발해 2016년 보급한 플레이버 휠은 인간의 사고방식을 반영했다.

커피를 마시고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플레이버 휠의 가장 안쪽에 있는 작은 원에서 찾는다. ‘꽃 같은’ ‘볶은 느낌’ 등 9가지 분류가 형용사로 표기돼 있다. 그리고 한 단계 바깥으로 나가면 ‘꽃 같은’은 블랙티와 꽃향으로 나뉘고, ‘꽃향’은 다시 가장 바깥의 세 번째 원에서 캐모마일, 장미, 재스민 등 3가지로 갈라진다. 안쪽 원에서 바깥으로 나가면서 형용사는 구체적인 속성을 나타내는 명사로 확정된다. 이것은 감각(sensation)에서 지각(perception), 다시 인지(cognition)로 진행되는 인간의 사유 구조를 빌려와 응용한 것이다. 고로, 커피의 향미는 우리를 깊은 사유로 이끈다.

커피를 마시고 향미를 표현하려면 처음에는 머릿속이 안개 낀 아침처럼 뿌옇고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푸르티(fruity), 플로럴(floral), 너티(nutty)”라 말하지만, 사실 이 단어들은 일정 이상 품질을 갖춘 커피라면 모두 들어 있는 향미들이다. 한 단계 더 들어가 그 향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는 명사, 곧 정체성(identity)을 확인해야 한다. 그 정체성은 우리가 경험한 기억 속에 있다. 커피의 향미를 깨치려면 사유해야 한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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