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폭염 때 공사중지’ 정부 지침… 노동자 76% “딴세상 얘기”

입력 : 2021-07-28 19:05:26 수정 : 2021-07-29 09:36:4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무더위 대책 현장선 ‘무용지물’

‘1시간에 10분 휴식’ 23%만 지켜
“오죽하면 ‘구청 신고하자’ 말 나와”

휴식 주어져도 제대로 쉴 곳 없어
10평 컨테이너에 10여명 다닥다닥

건설勞 “한주새 2명 온열질환 사망
권고는 강제력 없어 법제화 필요”
28일 서울의 한 건설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가 작업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스1

“사람들이 너무 더우니까 오죽하면 작업 중지를 위해 구청에 전화하자고 해요.”

 

지난 27일 오후 2시30분쯤 서울 강동구의 A아파트 주택재건축 현장 근처에서 만난 건설 노동자 김모씨는 온몸이 땀에 젖은 채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아직도 안에 사람들이 많이 일하고 있다”며 돌아가는 타워크레인을 가리켰다. 그는 “이런 날 일하는 건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다”며 “정부가 오후 시간대 작업을 중지하라고 했다지만 지키지 않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날 서울 지역 낮 최고기온은 36도에 육박했다. 같은 현장에서 일하는 철근공 임모씨는 “요즘 철근 파트는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쯤까지 일한다”며 “가장 더운 시간 때까지 일하니깐 힘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최근 ‘폭염 대비 노동자 긴급 보호 대책’을 발표하면서 무더위가 가장 심한 시간대인 오후 2∼5시에 전국 건설 현장의 공사 중지를 권고했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 온열질환이 원인으로 추정되는 건설 노동자 사망 사고도 잇따르면서 폭염 대책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건설노동조합은 28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윤미향 의원실과 공동으로 주최한 ‘폭염 노동실태 현장방문 및 간담회’를 통해 “26일부터 전날까지 서울 낮 최고기온이 35도를 상회하는 동안 건설현장에서 오후 2∼5시 작업을 멈춘 현장이 드물었다”고 주장했다. 소규모 공사일수록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게 건설노조 측 설명이다. 

 

정부 지침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이어지면 작업시간을 줄이거나 조정해야 하고, 35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되면 무더위 시간대 작업을 중지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건설노조가 조합원 1453명을 대상으로 이 지침 이행 여부에 대해 물은 결과 76.2%가 ‘폭염이어도 별도 중단 지시 없이 일하고 있다’고 답했다.

폭염특보 발령 시 1시간에 10∼15분씩 휴식을 보장해야 한다는 지침 또한 지켜지는 경우가 22.8%에 불과했다. 애초 이런 휴식 시간이 주어지더라도 대개 건설현장이 제대로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놓지 않아 무의미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간담회 현장에서 만난 건설 노동자 박모씨는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제대로 쉴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며 “좀 현실적인 휴식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 등 노동자 10여명은 이날 휴게실로 마련된 10평 남짓한 컨테이너에서 다닥다닥 붙어 누워 땀을 식혔다.  

 

정부 지침이 무용지물처럼 되다시피 하면서 무더위 속에 일하던 건설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22일 수서역세권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B(68)씨가 현장에서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26일에도 인천시 서구 원당동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C(54)씨가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건설노조는 “두 노동자 모두 추락이나 낙하 같은 재해를 입은 것이 아니다”며 “별다른 질환도 없이 더운 날씨에 계속 일해왔던 터라 온열 질환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들의 사망 원인을 조사 중이다. 최근 5년(2016∼2020년) 여름철 온열질환 재해자는 156명이고 이 중 26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건설노조 관계자는 “옥외 건설 노동자에게는 명확한 기준 없이 휴식을 제공하라고 권고할 뿐”이라면서 “폭염 대책이 건설현장에 이행되려면 권고가 아닌 법 제도화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도 “권고 수준인 폭염 대책을 법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며 “매년 반복되는 폭염 시기 전후로 작업시간을 탄력적으로 하는 방안 등 대책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