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패권의 대이동/김대륜/웅진지식하우스/1만6800원
고대 로마나 중세 몽골제국과 달리 전 세계의 광범위한 지역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패권국의 등장은 15세기에 시작된 대항해 시대의 결말 중 하나였다. 패권을 거머쥔 첫번째 주인공은 스페인이었다. 19세기 초 영토는 세계 지표면의 10%에 달해 인류 역사상 네 번째로 컸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란 수식은 흔히 ‘대영제국’을 일컫는 말로 알려져 있지만 스페인의 위세를 가리키면서 처음 등장했다. 특히 카를 5세, 펠리페 2세가 다스린 16세기 명실상부한 패권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스페인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세계를 호령한 국가로 군림했다. 책은 “이 네 국가들 간의 유사성과 상이성, 상호연관성에 주목하면서 한 국가의 부와 힘을 결정짓는 핵심요소가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패권국을 뒷받침하는 경제체제의 속성이다.
스페인의 국제적 위상을 떠받친 요소 중 두드러지는 건 아메리카 식민지다.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 대륙을 약탈한 스페인은 엄청난 양의 금, 은을 확보했다. 이는 국경을 맞댄 프랑스, 최전성기를 누리며 호시탐탐 유럽을 넘보던 오스만제국 등과 벌인 전쟁의 비용으로 활용돼 유럽 곳곳으로 흘러들었다. 이것이 다시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에 쓰였고, 스페인의 은화는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 구실을 하는 결과를 낳았다. 책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은이 쏟아져 들어온 16세기 중반부터 몇 세대 사이에 스페인제국은 ‘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넓은 영토와 경제력, 군사력을 충분히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제국의 위세가 절정에 이른 듯 보였던 이 무렵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벌이고 있는 전쟁으로 인해 엄청난 돈이 필요했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체계를 만들지 못한 게 문제였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제국을 통합하는 통치구조를 바꾸지 못한 것”이 두드러진다. 황제들은 제국을 개인재산처럼 취급했고, 제국 내 여러 왕국과 맺은 개인적 관계에 바탕을 두고 다스렸다. 이 때문에 내적 통일성을 부여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고, 그 결과 재정 자원을 효율적으로 동원하지 못했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은행가들을 윽박질러 돈을 마련하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스페인제국의 흥망을 분석하는 방식과 마찬가지로 책은 패권국 경제체제의 속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패권을 구성하는 요소를 드러내는 동시에 패권이 쇠락하는 이유도 밝힌다. 특히 경제 자원을 국가가 동원하는 데 필요한 제도, 기구 등을 망라한 ‘재정체제’에 주목한다. 지금 한창 벌어지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또한 두 나라의 경제체제, 재정 자원을 살펴봄으로써 앞날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책은 “모든 문제의 근원은 스페인제국이 중앙집중적인 재정체제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너무 많은 전쟁을 치른 것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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