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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오늘도 ‘노쇼 백신’ 짝사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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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18 23:08:43 수정 : 2021-06-18 23: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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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을 만나면 꼭 하는 인사성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잘 지내셨는지’, ‘날씨가 제법 여름 같지 않은지’, 그리고 ‘코로나19 백신 접종은 하셨는지’ 하는 물음이다. 지난달 27일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바로 ‘노쇼 백신’에 한해 비대상자에게도 접종 기회를 준다는 정부 발표였다.

그동안 30·40세대에게 백신 접종은 그야말로 먼 세상 이야기였다. 하지만 원하면 백신을 맞을 수 있다니…. 어떤 암시처럼 느껴졌다. 카페인이 잔뜩 든 음료를 마신 것처럼 심장까지 두근댔다.

배소영 사회2부 기자

결국 휴대폰을 집어 들고 빠르게 네이버 애플리케이션을 켰다. ‘노쇼 백신 예약’을 검색하고 ‘알림신청’을 누르니 인근 지도가 떴다. ‘최대 병원 5곳의 잔여 백신에 대한 알림신청을 해둘 수 있습니다’라는 안내 문구도 나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이럴 수가”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경북도청이 있는 안동시 풍천면에서 백신 접종을 하는 병원은 고작 한 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곳에 알림신청을 눌러놓고 다시 지도를 뒤졌다. 그나마 가까운 곳은 30㎞가량 떨어진 병·의원. 아쉬운 마음에 이곳들도 알림신청을 켜뒀다.

곧장 약국을 찾아 백신 이상 반응에 즉효라는 아세트아미노펜이 함유된 해열진통제를 샀다. 이제 나의 백신 접종 여부는 온전히 하늘의 운(運)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다림의 시간은 이어졌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하루에도 여러 차례 휴대폰 액정을 들여다보며 잔여 백신을 검색하곤 했다. 하지만 9일이 넘게 잔여 백신 알람이 뜬 곳은 ‘0곳’.

그러던 중 반가운 알람이 떴다. ‘코로나19 잔여 백신이 있어요. 서둘러 접종 예약하세요.’ 어쩐지 묘한 흥분감이 일었다.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기쁨도 잠시. 의원 문을 닫기 10분 전에 온 알람이었다. 그것도 35㎞나 떨어진 의원이었다. 날아가지 않는 이상 10분 만에 이동은 불가능했다. 백신 접종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주변에는 원정 백신을 맞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 그나마 의료시설이 제법 들어선 안동 시내 카페에서 노쇼 백신이 생기기를 바라며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다. 가까운 대도시로 이동해 백신을 맞고 오는 사람도 있다. 특히 1회 접종으로 끝이 나는 얀센 백신 맞기는 ‘하늘의 별 따기’이다.

의료기관 부족 문제를 절실히 통감한 순간이었다. 인구 2만명이 모여 사는 경북도청 신도시는 응급실을 갖춘 중형급 병원은커녕 이렇다 할 의료기관조차 없다. 농어촌은 의료기관 부족은 물론 노쇼 백신에서조차 소외되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이다. 대도시에 사는 사람은 느끼질 못할 소외감을 느꼈다. 하지만 별수 없지 않은가. 시골에 사는 나를 탓할 수밖에.

다음 날 아침 신문을 펴 ‘일일 운세’를 살폈다. ‘모처럼 뜻밖의 이득을 취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어떤 계시 같았다. 다시 노쇼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희망의 끄나풀을 잡았다. 노쇼 백신을 맞기 위해 오늘도 습관처럼 이리저리 휴대폰을 검색한다. 노쇼 백신을 향한 나의 짝사랑은 현재 진행형이다.

 

배소영 사회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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