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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막걸리… 제2 전성시대 맞는다 [이슈 속으로]

입력 : 2021-05-22 19:00:00 수정 : 2021-05-22 19: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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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빚기’ 무형문화재 지정 예고
‘거칠고 빠르게 걸러진 술’… 전통주의 기초
쌀·누룩·물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수 있어
‘쌀 문화권’ 대표주… 대중화 진행 한국 유일

전문가 “한국문화 재인식 계기” 한목소리
“와인 소믈리에처럼 전문인력 양성 필요”
벌써 인류무형문화유산 도전 주장까지
벨기에 맥주문화 등재… 日, 사케·쇼츄 추진
“상업적 측면보다 문화적 접근 강조해야”
사발에 담긴 막걸리.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사발을 두 손으로 받쳐 든 사내가 무언가를 들이켜고 있다. 고된 노동의 끝이었을까. 윗옷을 벗은 모양새까지 어울려 보는 이들도 함께 ‘캬∼’하고 시원한 감탄사를 내지를 것 같다. 사내 옆에 호로병을 든 이가 앉은 걸로 봐서는 술일 것이다. 막걸리가 아닐까.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점심’이 담고 있는 장면은 지금도 시골 어느 곳에 가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럴 때 어울리는 술은 역시 막걸리다. 그것 말고는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막걸리는 오랫동안 이 땅의 사람들과 함께 한 그런 술이다.

막걸리가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 예고됐다. ‘막걸리’를 빚는 행위와 문화를 총칭해 ‘막걸리 빚기 문화’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예고 기간 중 별다른 이견이 없다면 다음달 초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민들과 가장 가까이 있는 전통주 막걸리가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문화유산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며 격을 높인 것에 주류 업계는 기뻐하는 분위기다. 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보다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데 이견이 없다. 벌써부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우리의 전통주를 세계에 자랑하고, 인류 보편의 문화로 자리매김해보자는 것이다.

지에밥과 누룩. 국립민속속박물관 제공

◆전통주, 막걸리에서 시작한다

워낙에 친숙한 술이라 애주가라면 막걸리에 대해 잘 안다고 자부할 수도 있겠으나 제조법부터 주류 문화로서의 독창성 등 따지고 보면 모르는 게 적지 않다.

막걸리는 일반적으로 쌀을 깨끗이 씻어 고두밥(고들고들하게 지은 된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과 물을 넣고 수일간 발효시켜 체에 걸러 만든다. ‘막’은 ‘마구’, ‘이제 막’이라는 의미이며 ‘걸리’는 ‘거른다’는 뜻으로 ‘거칠고 빠르게 걸러진 술’을 말한다. 곱게 시간을 두고 맑게 거르는 술은 청주나 약주로 불린다. 막걸리가 전통주의 기초라는 걸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청주, 약주, 이들을 증류한 소주까지 막걸리(쌀을 발효한 술)에서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막걸리와 막걸리를 빚는 행위가 중요하다.

막걸리는 ‘쌀 문화권’을 대표하는 술이기도 하다. 별다른 가공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순히 쌀을 발효한 뒤 얻어지기 때문이다. 막걸리처럼 쌀을 발효한 술은 쌀 문화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다만 쌀 발효주가 다양한 양조장에 의해 제조되고 판매되는 상업화, 많은 사람들이 마시고 즐기는 대중화가 진행된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남도희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막걸리는 농업 중심 사회의 노동주로, 쉽고 빠른 제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근·현대 산업화 과정에서도 값싼 서민주로 막걸리가 작용하면서 상업적으로 성공,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쌀 문화권의 다른 나라는 가양주나 소규모 양조장의 형태로 대부분 판매보다는 자가소비한다”고 덧붙였다.

막걸리는 물과 쌀, 누룩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집에서 담그는 술, 즉 가양주를 대표하는 자격을 가진다. 가격도 저렴해 서민들이 접하기 쉬웠고, 쌀을 주재료로 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애용했다. 최근에는 유기농 햅쌀 등을 사용해 오래 숙성하거나 무감미료 등으로 다양한 맛을 내는 프리미엄 막걸리가 출시돼 이색적인 체험을 중시하는 MZ세대에게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단원 김홍도의 ‘단원 풍속도첩’ 중 점심. 그림 오른쪽 위에는 막걸리가 담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호로병을 잡고 있는 여성과 대접에 담긴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남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막걸리 소믈리에 어떤가”, 체계적 관리 필요

막걸리 빚기 문화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이 주는 의미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문화에 대한 재인식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은 “막걸리는 김치, 된장, 간장처럼 가정에서 직접 만들어 먹던 발효 음식의 한 가지로 한국의 식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물질문화”라며 “막걸리는 한국의 음식 문화, 물질문화, 의례문화, 대중문화를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기재”라고 평가했다. 남 사무국장은 “막걸리와 막걸리 빚기 문화는 오랜 역사와 삶 속에서 명맥과 쓰임을 함께 해왔고, 지역마다 특성을 반영해 발전했다”며 “막걸리 빚기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 막걸리도 자연스럽게 전통주로 법의 보호와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 국장에 따르면 전통주는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 보유자, 대한민국식품명인 등이 제조한 술만 포함된다. 소규모 양조장 등에서 만들어지는 막걸리는 ‘주류’일 뿐 ‘전통주’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막걸리를 체계적으로 관리, 감독, 교육할 수 있는 수단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 교장은 “막걸리를 어떻게 빚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배울 수 있는 기준인 막걸리 빚기 국가 자격증이 필요하다”며 “전 세계에 막걸리를 알리기 위해 와인 소믈리에처럼 막걸리를 추천하고 설명해 줄 수 있는 전문가도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통누룩.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인류무형유산 도전, 가능할까.

막걸리가 김장처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은 2001년부터 유네스코가 소멸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의 보존과 재생을 위해 구전 및 무형유산을 확인·보호·증진할 목적으로 선정한 가치 있고 독창적인 구전 및 무형유산이다.

주류 문화 칼럼니스트인 숙명여대 명욱 교수는 “막걸리 빚기의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대 조지아의 전통 크베브리 와인 양조법(2013년)과 벨기에의 맥주 문화(2016년)의 등재를 사례로 들었다. 고대 조지아에서는 크베브리라 불리는 거대한 항아리를 땅에 묻고 발효시켜 와인을 만들었다. 우리의 김장 문화와 비슷하다. 벨기에에서는 200여개 양조장에서 3000여종의 맥주를 만들고 있는데, 각각의 역사성과 개성이 뛰어나다. 맥주 하면 대부분 독일을 떠올리지만, 벨기에의 ‘맥주 문화’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룩을 빚는 데 사용된 누룩틀.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자국의 주류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국가들도 있다. 일본이 대표적이다. 사케(酒·일본식 청주) 및 쇼추(?酎·일본식 소주) 등재를 노리는 중이다. 지난달 28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국회에 출석해 “사케와 쇼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도록 추진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명 교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 산업적인 이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술에 더 큰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막걸리 빚기 문화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예고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포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2013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지만, 아직 등재되지 않은 독일의 맥주 순수령 사례를 참고해 막걸리의 상업적인 측면을 강조하지 말고 문화적인 접근을 통해 등재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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