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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걸작 ‘한국에서의 학살’… 70년 만에 한국에 오다

입력 : 2021-05-06 20:29:51 수정 : 2021-05-07 16: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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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40주년 특별전

佛 공산당원 시절 전쟁 소식듣고 그려
양민학살장면 연상 등 한때 논란 불구
전쟁 잔혹성 고발·반전 메시지로 해석

20대 청년기부터 80대의 황혼기까지
유화·판화·조각작품 등 110점 전시
피카소의 열정적 미술인생 엿볼 기회
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1951)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Korea) 비채아트뮤지엄 제공

겁에 질린 아이가 임신한 여성의 배 뒤로 얼굴을 파묻고 숨어 있다. 까치발을 한 채 몸을 바짝 붙인 모습에서 공포가 전해진다. 일그러진 얼굴의 여성은 팔로 아이를 있는 힘껏 숨긴다. 강물 줄기를 경계로 그림의 정확히 그 반대쪽 끝은 무장한 이들이 숨기고 있는 뾰족한 검이다. 여러 총칼과 투구, 갑옷으로 무장한 것으로도 모자란 군대가 숨긴 또 다른 살상 무기. 가로 210㎝, 세로 110㎝의 이 대작 뒤에는 작품을 완성한 날짜와 장소인 ‘1951년 1월 18일, 발로리스’라는 파블로 피카소의 친필이 남겨져 있다. 바로 그 유명한 20세기 큐비즘의 창시자 피카소의 전쟁 3부작 중 세 번째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이다.

‘한국에서의 학살’이 완성 7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Into the Myth)’을 통해서다.

이번 특별전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국립 피카소미술관의 소장품을 최초로 국내로 들여온 전시다. 프랑스 파리에서 유화, 판화, 조각작품 110점이 왔다. 역사적 대가의 우리 국호가 들어간 유일한 작품인 ‘한국에서의 학살’도 그중 하나다. 피카소미술관은 해외에서 대여 요구가 많아 이같이 대규모로 작품을 옮겨와 회고전을 하기 쉽지 않다. 미술계에서 프랑스통으로 소문난 서순주 전시총감독이 로랑 르 봉 관장과 오랜 지인이었기에 가능했다. 서 감독은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피카소미술관장과 오래전부터 ‘한국에서의 학살’을 들여와 반전 평화 메시지를 주는 전시를 가지려고도 했으나 코로나19로 여러 국가에서 작품을 이동시키는 게 여의치 않았고, 이참에 피카소의 일대기를 우리 국민이 국내에서 볼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기투합했다”고 소개했다. 피카소 회화 약 300점을 소장하고 있는 피카소미술관에서 회화작품 10% 이상을 외부에 대여하는 일은 흔치 않다고 한다. 로랑 르 봉 관장은 전시 주관사 비채아트뮤지엄을 통해 보낸 메시지에서 “이 전시의 심장이라 불릴 만한 아주 특별하고 걸출한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이 여러분의 나라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전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당시 프랑스 공산당원이었던 피카소가 당 기관지 ‘휴마니떼’(휴머니티)를 통해 6·25전쟁 발발 소식을 접하고 그린 그림이다. 지구 반대편, 한국에 대한 정보도 없던 상태에서 ‘미군의 북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는 정치적으로 굴절된 기사를 읽고 그렸다. 국내에서도 이념대립 속에 신천군 학살, 노근리 학살 등 특정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의심도, 미군을 비난하는 그림이냐는 추궁도 있었지만, 피카소가 일찌감치 내놓은 대답은 이런 논란의 편협함을 꼬집는다. 그는 1953년 인터뷰에서 “전쟁의 장면을 그릴 때, 어느 나라의 군복, 군모를 생각하며 그린 적이 없다”고 답함으로써 특정 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림은 왼쪽과 오른쪽에 뚜렷하게 대비시킨 요소로 상징성, 보편성이 강조된다. 왼쪽은 여성과 아이, 벌거벗은 맨 몸, 생명을, 오른쪽은 남성,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몸, 살상으로, 각각 약자와 강자의 상징들로 꿰었다.

피카소는 양대 업적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중세 이래로 기존 미술의 법칙이었던 원근법을 깨고 다시각을 한 화면에 넣은 미술의 혁명, 입체주의(큐비즘) 창시와 예술의 사회참여라는 업적이다. ‘한국에서의 학살’은 그 업적의 대표작이다. 서 감독은 “미술이 집을 장식하는 기호품이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 부조리를 고발하는 이미지로서 힘을 가진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큐비즘 발명 못지않은 피카소의 주요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이 작품은 피카소가 존경했던 18세기 말∼19세기 초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1980년 5월 3일’의 구도를 따와 자신의 화풍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2차대전 종료와 함께 전쟁의 시대가 가고, 유럽의 넘쳐나는 물질적 풍요 속에 소비의 시대가 오자 반전평화를 역설하는 이 그림도 한동안 수장고에서 잠들었다. 메시지가 뚜렷한 선전물로 다가오기도 했기에 예술성도 크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세계적인 반전 이슈 부상 속에 이 작품은 수장고에서 나와 다시 세계를 누볐고 작품의 의미와 예술성도 재발견됐다.

‘마리 테레즈의 초상’(1937) ⓒ2021-Sucession Pablo Picasso -SACK(Korea)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의 학살’을 전시 절정에 배치하고 있지만, 이 작품이 전부는 아니다.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2년간 공동작업을 했을 정도로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영향을 받았다는 피카소의 청동 조각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기타와 베스’는 벽에 걸린 평면이면서도, 부조처럼 입체적인 조각이기도 해 당시로선 파격적인 작품이나 후대엔 현대조각의 출발을 알린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시의 최고가 작품으로, 보험가만 800억원에 달한다. ‘마리 테레즈의 초상’ 등 입체주의에 몰입한 상태에서 그려낸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도 황홀한 기회다. 피카소의 20대 청년 시절부터 80대 만년의 작품까지 망라해 그의 열정적 미술 인생을 연대기별로 보여준다. 8월 29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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