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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꿀벌들이 만드는 ‘인지자본주의’ 부상”

입력 : 2021-04-17 03:00:00 수정 : 2021-04-16 19: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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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번창 조건은 꿀이 아니라
꿀벌의 의도치 않은 꽃가루받이
인지능력 통해 연대·협력 시스템
산업자본주의 대안으로 바람직
유럽 꿀벌이 가을 국화에 앉아 꿀을 채집하고 있다. 꿀벌은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꽃가루를 묻히고 다른 꽃으로 날아가 수분(꽃가루받이) 활동을 한다. 이처럼 우리 역시 유기적인 연대와 협력,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에게 기여하는 꽃가루받이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하고 있다.

꽃가루받이 경제학/얀 물리에 부탕/서희정 옮김/돌베개/1만6000원

 

세계 1위 검색엔진 기업 구글은 캘리포니아 본사 소재지 마운틴뷰시에서 근무하는 1만9000명 외에도 1500만명의 기여를 통해 수익을 낸다. 구글의 검색엔진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 1500만명은 누구도 아무런 대가 없이 이 회사를 위해 일해왔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정보를 생산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데, 여기에는 원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게다가 구글은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를 통해 1만9000명이 일해서 얻는 것에 약 1000배 넘는 수익을 챙긴다.

책 ‘꽃가루받이 경제학’은 우리를 익명의 꿀벌에 비유한다. 꿀벌은 꿀을 얻어가지만, 무의식 아래 이뤄지는 꽃가루받이 활동으로 꽃을 널리 퍼트린다. 그래서 꽃가루받이 활동은 네트워크 형성 활동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저자는 벌꿀과 벌집(부의 생산)의 시장가치보다 꿀벌의 꽃가루받이(기여)가 더 큰 가치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생태계를 유지하고 번창하게 하는 조건은 꿀이 아니라 수많은 익명의 꿀벌이 의도치 않게 수행하는 꽃가루받이라는 설명이다. 구글이 수천만 명의 자발적 지적활동, 네트워크와 정보 등 비물질적 요소를 통해 더 큰 이익을 얻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기존 생산과 교환의 경제 공식이 성립하던 산업자본주의는 이제 유효기간이 끝나간다는 게 프랑스의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저자의 설명이다. 효율성과 수치로 환원되는 경제학이 과연 인간의 삶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늘고, 단기 수익 창출을 목표하던 자본주의와 이를 뒷받침해온 주류 경제학이 ‘인간’을 대상화해왔다는 비판이 계속 나온다. 빈부 격차와 불평등은 점차 커지고 세계인의 삶은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 더욱 팍팍해져만 간다.

얀 물리에 부탕/서희정 옮김/돌베개/1만6000원

전문가들도 이 같은 주장에 힘을 보태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교수는 최근 ‘코로나19와 세계 불평등’을 주제로 발표한 글에서 ‘국내총생산(GDP) 지표가 빈곤국이 겪는 고통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기존 방식으로는 분배, 환경, 행복 등 삶의 질을 나타내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팬데믹과 기후변화, 불평등, 실업, 경기 침체 등 복합적인 세계 경제 위기는 신자유주의 원리와 통화량 안정의 원칙을 폐기하기 직전이다.

저자는 꽃가루받이 경제학이 이런 사회·경제 변화와 위기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한다. 꽃가루받이 경제학의 핵심은 산업자본주의에서 ‘인지자본주의’로의 전환이다. 인지자본주의는 지식, 정보, 감정, 소통 등 인간의 인지 능력이 자본 축적의 동력이 되는 자본주의를 말한다. 무형의 비물질경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비물질경제는 플랫폼과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인지활동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동한다. 마치 꿀벌이 꽃가루를 퍼트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제 경제 가치는 노동시간당 생산량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현대 기업은 단순한 사무 처리 능력이 아닌 일의 맥락을 창의적으로 이해하고 처리할 수 있는 능력, 정서 작용(협력), 인적 조직을 활용하는 능력 등을 원한다. 가치가 물질적 요인보다 비물질적인 인지 능력을 통해 창출된다는 진단이다. 이 인지 능력은 개인의 역량뿐 아니라 사회적 신뢰와 협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사회의 유기적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됐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사람들이 인지활동을 활발히 이어나갈 수 있게 이들을 보호하는 돌봄경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기적인 수익은 이제 노동·성과 관리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으며 경제활동 주체들의 혁신과 창의성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금융거래세 등 공정한 과세 기준의 도입이 대표적이다. 모든 금융 거래에 대한 과세는 금융 체제 전반을 감독함으로써 금융의 흐름을 투명하게 감시하고, 방만한 금융 유동화의 폐해를 막을 수 있다.

그는 여기에 더해 금융거래세 등을 통해 마련한 재원은 부의 재분배 차원에서 기본소득제 등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인간의 활동과 사회적 관계에서 부를 창출하는 꽃가루받이 경제는 발생하는 수익을 다시 꿀벌에게 돌려줌으로써 지속적이고 더욱 건강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은 환경을 개발하고 파괴할수록 경제성장 지표(GDP)가 늘어났지만, 이제는 기후 위기로 인해 위협받는 꿀벌을 지키기 위해 회계장부에 환경이라는 기준을 도입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도래하는 전환의 시대에 공정·공생의 패러다임을 주창하는 저자 얀 물리에 부탕은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상황에 대안적 상상력을 제시한다. 그는 콩피에뉴 기술대학 경제학과 명예교수로서 정치경제학, 복잡계 경제학, 지식재산권의 법경제학을 가르쳐왔다. 상하이대학 중국·프랑스공학연구소(UTSEUS) 겸임교수이며 계간지 ‘뮐티튀드’를 공동 창간해 편집장을 맡고 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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