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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칼럼]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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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14 22:38:15 수정 : 2021-03-14 22: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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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문에 은퇴한 영국 정치인
자선단체 투신… 다시 명예회복
지도층 잘못 세간 잣대로 인식
실수 인정… 회개하는 모습 필요

한때는, 일본 사람들이 자살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자살도 일본 사람답게 의식과 절차를 따라서 당당하게 혹은 참혹하게 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혹한 현실이 비장한 이야기로 되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일도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와 반대로 한국 사람들은 곤란한 일을 저지르고는 “배를 째라” 하는 식으로 버틴다는 말도 있었다. 물론 농담 수준의 이야기이지만 일본의 지인 중에는 이런 말을 신기하게 여기고 그에 관해서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에서 자살률 첫 번째의 나라가 되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중에 한국의 지도층 인사 중에서도 가장 양심적이고 진보적이라고 알려졌던 분들이 있고 그중에는 전직 대통령도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있을 때 어쩌다가 자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사석이건 혹은 강연 같은 공개된 자리에서건 매우 비판적인 발언을 하곤 하였다. 그런 경우 설명에 흔히 예를 들던 인물이 둘 있다. 일본에서 크게 추앙을 받는 군인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가 그중 하나이다. 이분에 관한 이야기는 한때 일본의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렸었고 아직도 도쿄에 이분을 모시는 신사도 있다고 들었다. 이분이 높이 추앙을 받는 것은 유능한 군인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전장에서는 무능하였지만 자신이 저지른 실패의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었다고 들었다. 러일전쟁 당시 뤼순을 공략한 일본 제3군 사령관이었는데 잘못된 지휘로 막대한 피해만 초래하고 성과도 이루지 못했다고 들었다. 대략 지휘하던 13만 병사의 반 정도가 전사했는데도 아무런 전과가 없었기에 교체되었는데 귀국 후 자살을 하려 했으나 메이지 천황이 이를 금지했기 때문에 자제하고 있다가 그가 서거하자 부인과 함께 자결했다는 이야기이다.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또 다른 인물이 한 분 있다. 지난 세기 ‘60년대 초 한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추문이 신사의 나라로 알려진 영국에서 벌어졌다. 주인공은 정계의 유망주, 당시 보수당 정부의 육군장관 존 프러퓨모였는데 그는 크리스틴 킬러라는 직업여성과 요즘 말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가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자 하원에서 이를 부인하는 거짓말을 했다. 마침내는 책임을 지고 치욕 속에서 정계 은퇴를 하였다. 이 사건은 물론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고 당시 집권했던 보수당의 맥밀런 정부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주인공은 책임을 지고 자살을 했음 직하지 않은가? 그런데 2000년대 초 영국에 부임해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이제 치욕도 책임도 과거의 일이었으리라 잊혀졌던 인물, 프러퓨모가 영국인들이 부러워하는 작위를 받은 것이었다. 정계 은퇴 후 그는 자선단체에 투신해서 열심히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을 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왕실에서 그런 명예를 수여한 것이라고 들었다.

 

나는 이 두 분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보자고 제의했다. 이른바 ‘대의’를 위해 생명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것이 혹 노기 장군의 전투 지휘나 본인과 부인의 자결과도 관련이 되는 것인가? 만약 무인으로서 책임감이 컸다면 손쉬운 자결보다는 남은 생애에 희생된 병사들의 유족을 돌보는 일을 하는 것이 더 바른 선택이 아니었겠는가? 반응은 크지 않았다. 두 가지, 가볍게 고개를 기울이는 것으로 이해나 공감을 표시하든지 아니면 무표정인데 나는 후자를 반대 혹은 반감의 표시로 해석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의 ‘사람’만이 아니라 적어도 둘 이상의 사람(Multiple Self)이 있다. 사회적인 명망이 있는 분들일수록 평소에 자신을 “그런 분이 아니다”라는 세인의 인식으로만 생각한다. 그런데 또 다른 자아가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다윗이나 솔로몬 같은 영웅들도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있었다. 그런 경우 이분들은 잘못을 고백하고 반성과 회개의 길을 갔다. 잘못은 그것을 드러내어 인정하고 반성하는 경우 반드시 부정적인 결과만을 빚는 것은 아니다. 다윗의 잘못은 솔로몬 같은 현인 왕을 낳지 않았는가?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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