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괜찮다”는 아버지 평소 말씀 듣고 넘긴 것 통탄
재해 8개월 후 ‘부흥식당’ 출발…지역에 공헌하며 앞으로
“내 이야기 듣고 소중한 삶과 가족 생각하는 계기 되기를”
■동일본대지진 10년 재난 속 희망 일구는 사람들 (2) - 3·11 때 부친 실종 이와마 게이코씨

아버지 이야기를 하던 이와마 게이코(岩間敬子·58)씨의 두 눈엔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휴지를 건네려 가방을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일본 이와테(岩手)현 가미헤이(上閉伊)군 오쓰치초(大槌町)의 이와마씨는 10년 전 그날 쓰나미가 인근 친정을 덮쳐 당시 77세 아버지가 행방불명됐다. 밀고 들어온 바다 위에는 기름 유출로 화재가 발생해 검은 연기의 낮과 불기둥의 밤이 2박3일간 이어졌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와마씨는 처음에는 진흙더미가 변한 집터와 피난소를 찾아 헤맸다. 그다음은 유해 안치소. 어디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당시에는 “슬픔도,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몇 살이시지…”라고 나이를 세어 보곤 한다며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이와마씨에는 통탄스러운 것이 있다. 이와마씨는 “쓰나미가 오기 직전 남편이 모시러 갔는데 아버지는 ‘이제까지 쓰나미가 산 밑에 있는 집 근처까지 온 적은 없다. 불단과 사진을 2층으로 옮기고 어머니만 잠시 데리고 가라’고 한 것이 운명을 갈랐다”고 말했다. 평소에도 “우리 집은 괜찮아”라던 아버지 말씀을 그냥 흘려보낸 게 후회스럽다. 해마다 아버지 생신인 12월이면 실종자 정보를 관리하는 경찰을 찾아 새로운 것이 없는지 확인하는 연중행사를 하면서 실낱같은 재회의 희망을 이어간다.

이와마씨는 재해 8개월 후인 11월 가설 텐트에 부흥식당을 꾸리며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다.
부흥식당은 처음에는 재해복구 지원을 나온 자원봉사자들에게 따뜻한 음식 한 그릇 제공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곧 집과 가족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던 주민의 재회 광장이 됐다고 한다.
“한 번은 등을 마주 보고 먹던 남녀가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는 기뻐하며 얼싸안는 모습을 봤다. 부부가 아니라 그냥 이웃이었다. 둘 다 가족을 잃어던 상황에서 지인을 만나자 가족처럼 기뻐했던 것이다.” 이와마씨의 이야기다.
지금은 시민단체 오라가(우리동네)오쓰치광장 소속으로 청소년이나 관광객에게 재해 경험 전수와 교육을 하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이와마씨는 “재해 시 왼쪽으로 갈지, 오른쪽으로 갈지, 순간의 판단에 따라 생사가 뒤바뀐다는 점을 설명한다”며 “어떤 행동을 해야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지킬지 머리에 넣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재해 시 가족끼리 만나기 위해 재회 지점을 미리 약속하라”는 조언을 한다고도 했다.
이와마씨는 “인생에서 여러 가지 일이 발생하고 여러 가지 어려운 벽에 부딪힐 수 있다”며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상황에서 생명을 지키고, 삶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담담히 말했다.

■동일본 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14시46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초강진이다. 이 사고로 1만5899명이 숨지고 2529명이 행방불명됐다.(일본 경찰청 2020년 3월1일 기준) 1960년 칠레 대지진(규모 9.5), 1964년 알래스카 지진(9.2),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9.1)에 이어 20세기 이후 세계에서 네 번째로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됐다.
강진 발생 이후 초대형 쓰나미가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현 등의 해변 도시들을 휩쓸었고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일대까지 건물 붕괴와 대형화재가 잇따르며 피해가 속출했다.
특히 높이 15m의 초대형 쓰나미가 덮친 가운데 전원 공급 중단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가동이 중지되면서 원자로 1∼3호기에서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했다. 1·3·4호기에선 수소폭발이 일어나 막대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대기와 해양으로 누출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기체 형상을 제외하고 52경㏃(베크렐)로 추정되고 있다. 경은 1조의 1만배다. 바람의 영향으로 방사성 물질의 70%는 삼림으로 유입됐으며 삼림에서는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사고는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 기준으로 1986년의 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최고 레벨(7)로 분류됐다.
오쓰치초(일본 미야기현)=김청중 특파원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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