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올 무렵,
운동장에 흰 눈이 푹푹 내리고
4교시가 오기도 전,
교실 가득히 데워지는 밥 내음
난로에 갈탄을 넣고
양은 도시락을 번갈아 올려놓지만
새까맣게 타는 일도 부지기수
산골 아이들은 가져온
고구마 감자를 구우며
우리의 겨울은
수업보다 추억 쌓기에
눈 내리는 줄 몰랐네
마가린을 두른 도시락 밑,
김치와 계란말이는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추억
눈이 팡팡 내리고 운동장 동무들은
눈송이처럼 동글동글해졌다네.

1996년 3월 1일 국민학교 명칭이 초등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해방 반세기가 지나서야 일제가 남긴 오욕의 이름인 국민학교를 지웠습니다.
지금은 ‘국민학교 동창’ ‘초등학교 동창’은 세대를 가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저도 시인도 국민학교 세대입니다.
국민학교 창밖 운동장엔 눈이 팡팡 내리고 교실 안에서는 갈탄 난로에 도시락이 산처럼 쌓여 밥 타는 냄새와 김치 냄새, 고구마, 감자 굽는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그 시절만 해도 마가린이나 계란말이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으니까요.
제 친구인 종재는 넉넉하지도 않은 집안인데도
도시락을 두 개씩이나 싸와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종재는 하늘나라에서 동글동글한 눈송이를 푹푹 내려주고
우리는 동글동글하고 푸근한 얼굴이 되어 하늘을 바라봅니다.
박미산 시인, 그림=원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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