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기술 융합된 ‘9인 9색’ 작품으로 축제
11월 1일 폐막… 이후 넉달 간 아카이빙 전시
인터랙티브아트 문준용 확 달라진 그림자놀이 눈길

세상에 홀로 맞서본 사람은 기억한다. 그들의 눈초리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손전등으로 빛을 비추어 보지만, 빛을 비추는 곳마다 나타나는 검은 실루엣의 사람들과 보색대비를 이루는 그들의 샛노란 눈초리만 유독 매섭다. 쑥덕거리는 소리는 생생하게 울리는데 뭐라는지는 알 수 없다. 나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비겁한 사람들은 어둠 속에 숨은 터라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다. 이 이상한 집의 내부를 헤맨 끝에 문밖으로 나가보지만, 마주친 사람은 한밤중 거리에 놓인 벤치에 앉아 수군거리고 있는 두 남자. 그들의 눈빛은 내가 다가갈수록 더욱 뻔뻔해져 눈동자 속 동공과 홍채 무늬까지 선명하게 나를 향해 부릅뜬다. 고개를 돌릴지, 버티고 또 발걸음을 내디디며 그들의 정체를 추적할지는 온전히 무대에 선 관람객이 결정한다.
그림자와 증강현실(AR)을 이용한 인터랙티브 아트로 따뜻하고 서정적인 작품을 선보여온 문준용 작가가 완전히 달라진 작품을 내놓았다. 지난 23일 개막한 ‘2020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에서다.
인천 영종도 국제도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에서 예술과 기술이 결합한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문준용과 양정욱, 우주+림희영, 이정인 크리에이션, 조영각, 최성록, 태싯그룹(Tacit Group), 콜렉티브에이(Collective A), 프로토룸(PROTOROOM)이 선보이는 9인 9색의 개성 있는 신작들이다.

◆문준용의 스릴러 인터랙티브
문준용이 선보인 ‘어그먼티드 섀도-인사이드(Augmented Shadow-Inside)’는 그의 전작들과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손전등에 센서를 부착해 센서가 손전등의 위치를 감지하게 하고, 예상되는 빛과 그림자의 방향과 크기, 각도, 명암을 계산해내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어 무대에 물체를 세우고, 거기에 손전등을 비추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그림자 위에, 증강현실 기술로 창작된 화면을 정교하게 겹쳐 보이게 하는 식으로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의 작품에는 그간 집과 새, 나무, 사람이 등장했고, 이 소재들은 증강현실 기술이라는 차가움에 따뜻한 생명, 온기를 불어넣곤 했다. 가령 전작 ‘안녕, 그림자(Hello, Shadow)’에서 관람객이 비춘 손전등의 그림자 속에 출현하는 사람은 서정적 음악을 배경으로 관람객을 향해 손짓했다. 그렇게 따뜻하게 그림자 세계에 초대된 관람객을 환영해줬다. ‘박수근, 빛고을’에선 소박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살아 움직이며 보는 이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서정적인 사운드 대신 멈출 줄 모르는 수군거림이, 마음을 녹이던 따뜻함 대신 온몸을 얼려버리는 긴장감이, 동화 대신 스릴러가, 환상적 판타지 대신 지독한 현실이 있다.
“미스터리하고 스릴러적인 서사와 분위기를 만들어보려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지만, 작품의 첫인상은 작가가 경험하는 특별한 처지와 상황에 대한 표현으로 읽힌다. 적이 많은 대통령, 팬도 많은 대통령, 그 논란의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아들.
그가 보여주는 이 인터랙티브 서사에 등장하는 등장 인물 가운데 눈길을 끄는 또 다른 등장 인물이 있다. 유일하게 관람자를 쏘아보지 않고 있는 한 인물. 그는 폐쇄회로(CC)TV로 추정되는 물체를 바라보고 있는 그림자인데, 이 미스터리한 건물 안의 감시자처럼 보인다. 감시자이면서도 이 사태에 무관심해 보이는 그 역시 명백한 호러물의 한 요소다. 쏘아보거나 감시하면서 이 정체 모를 공포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이 세상일까, 적일까, 아니면 내 곁의 보호자일까. 그의 작품을 체험하다 보면, 굳이 정치적 해석을 배제하고 작품을 보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작가의 독특한 상황을 대입하고 정치적 은유를 발견하는 것 또한 몹시 흥미롭기 때문이다.

◆사진 속 픽셀들의 반란
프로토룸의 ‘메타픽셀스(MetaPixels)’ 역시 관람자를 흥분시키는 작품이다.
거대한 화면 앞, 삼각대에 놓인 디지털카메라 3대가 서 있다. 관람객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디지털카메라 화면에 ‘붉다면 상승해라’, ‘푸르다면 흩어져라’, ‘녹색은 흘러내려라’ 하는 식의 명령문이 떠오르고, 거대한 화면에 있던 이미지가 조각나며 마치 명령을 알아들은 것처럼 일부는 상승하고 일부는 흩어진다. 그렇게 눈앞에서 거대한 화면이 부서져 가는 모습이 신비롭고 환상적이다.
이 작품을 선보인 미디어아트그룹 프로토룸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진의 경우 픽셀 하나하나의 존재가 최대한 드러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는데, 거꾸로 이 가려져 있는 존재인 픽셀들에 메시지를 보내고 개별행동을 하게 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봤다”고 설명했다.

매끈한 사진이 아니라, 픽셀에 지시를 보내 화면을 왜곡시키고, 그 결과로 만들어지는 화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원본 화면과는 다른 제2, 제3의 작품이 만들어지는데 때로는 수묵화처럼, 때로는 아름다운 추상화 같은 화면이 생성된다. 단호한 명령체의 메시지를 받들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픽셀들이 아름다운 반란을 일으킨 결과다.
전시장에서 만난 프로토룸은 “기술은 날로 발전하지만 우리는 그 기술이 무엇을 근간으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모른 채 결과물만 접하며 살아가고 있다. 만약 무언가 사고가 나거나 잘못됐을 때, 인간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모르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을까. 기술의 근간에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것을 감각하고 관찰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싶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1일까지.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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