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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자본주의, 진화를 마주하다

입력 : 2020-10-10 03:00:00 수정 : 2020-10-09 19: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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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공산주의 사라져
자본주의 자신 비춰볼 거울 없어
자유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 분화
미국·중국이 각각의 체제 대표해
자본주의 진화에 ‘정치’가 큰 역할
불평등 연구의 석학으로 불리는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미국식 자유자본주의는 2차 대전 이후 세계 여러 곳으로 이식되는 능력을 보여주었지만, 불평등 격차를 귀족시대까지 끌어올렸다. 불평등의 극대화라는 귀결을 맞은 자본주의는 피할 수 없는 변화 앞에 서 있다”고 설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홀로 선 자본주의/브랑코 밀라노비치/정승욱/김기정/세종서적/2만1000원

 

공산주의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시점은 1990년대 후반이다.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경제체제는 자본주의밖에 남지 않았다. 1990년대는 그야말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마침내 승리했다면서 자부하던 시대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이 역사 관찰의 결정판으로 평가받으며 필독서로 애독됐다.

하지만 당시 뉴욕 월가의 금융 엘리트들은 의외였다. 필독서 1위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꼽았다. 이미 알려진바 자본론은 자본주의 체제의 맹점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비판 이론이다. 미국식 자본주의의 엘리트들이 자본론을 필독서로 꼽다니 신선하고 아이러니했다. 그들도 역시 마르크스처럼 자본주의의 맹점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거울이었던 셈이다. 성찰의 거울을 잃은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의 운명일지 모른다. 극도의 분노와 광기, 그리고 냉소가 세계 곳곳의 정치 현장에 차고 넘쳐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서구 민주주의 역사에 불어닥친 위기감이 그것이다.

이제 냉전 이후 홀로 선 자본주의는 자신을 비춰볼 거울이 사라졌다. 탐욕적 자본주의,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냉소적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은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인류를 풍요롭게 할 것인가. 저자는 ‘미국식 자유자본주의,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누가 승리할까’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 그 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하버드대, 예일대, 뉴욕주립대 등에서 불평등 문제를 강의해 인기를 얻고 있는 ‘불평등 연구의 석학’ 브랑코 밀라노비치(사진) 교수가 썼다. 영국의 유력 경제경영전문지 파이낸셜타임이 2019년 말 올해의 책으로 선정한 명작이다.

저자는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승리한 자본주의를 절대 찬양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남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 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에 천착한다. 탐욕적 자본의 속성, 불평등 문제들을 속속들이 파고든다.

저자의 시각은 내부 분화를 시작한 두 가지 유형의 자본주의에 집중한다. 하나는 자유자본주의(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 중심의 국가자본주의다. 자유자본주의는 서구의 전통 위에서 다져진 양식이며, 국가자본주의는 서구 지역 밖으로 전이되어 변용된 양식이다. 전자를 미국이 대표한다면, 후자는 중국이 대표한다.

브랑코 밀라노비치/정승욱/김기정/세종서적/2만1000원

저자가 지적하는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모순은 명백하다. 즉,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는 불평등의 심화 추세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소득 불평등은 날로 커졌고, 계급 간 이동과 세대 간 소득의 불균등은 깊어졌다. 이런 모순으로 자본주의는 안정성조차 위협받고 있다.

 

이에 비해 국가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개입하는 국가자본주의는 기계적 성격을 띤다. 이 체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야만 국가가 유지되는 근원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 게다가 민주적 검증의 부재로 인해 쉽게 무력화되는 단점이 있으며, 법치의 부재로 부패를 양산하는 맹점이 드러나고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 책은 오늘날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중국 분석의 방법 중 하나다. 이미 알고 있다시피 미·중 갈등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키신저 패러다임(미·중 경쟁은 가능하나 충돌은 대안이 아니라는 주장)은 이미 논변의 토대를 잃었다. 중국 위협론에서 시작된 대중 견제는 이제 미국과 서구사회의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도 만만찮게 대항하고 있다. 덩샤오핑이 설파했던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조심스러운 태도는 베이징에서 조기에 실종됐다. 신형 대국론을 앞세운 대국굴기론(大國崛起論)이 대세이다.

21세기 미국은 새로운 대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앞세워 중국을 타박한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언술을 통해 상대방을 악마로 만든다. 중국이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것은 비민주화된 국가이기 때문이라는 단순 담론으로 귀결시킨다.

저자의 진단과 전망은 아카데믹하다. 그는 중국식 자본주의(국가자본주의) 양식에 비판적 견해를 견지하면서도, 향후 자본주의 변화의 대안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더욱이 미국식 자유 성과주의적 자본주의가 국가자본주의로 변형될 가능성도 열어둔다.

저자는 결론에서 자본주의 진화에 정치의 역할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조세 정책(중산층 조세 완화, 부자 증세)을 조정하는 일, 공립학교의 기능을 질적으로 향상시키는 결정, 시민권 향상 같은 사안은 정치적 영역이다. 그런 정치적 판단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장을 지낸 김기정 교수는 이 책을 감수한 글을 통해 “한국 시민사회에 꼭 필요한 시대 관찰기다. 다른 나라가 아니라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희망이다. 시민들의 일독을 권한다”고 말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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