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는 사건이 있다. 바로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이다. 핍박받던 민중이 스스로 들고일어나 성직자·군주·귀족이라는 특권층을 없애고, 1000여년 계속된 불평등한 유럽 봉건제도를 끌어내린 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특히 프랑스 혁명은 ‘짐이 곧 국가’라는 절대적인 왕권을 자랑한 태양왕(Le Roi Soleil) 루이 14세(Louis XIV, 1638~1715년)가 죽은 지 100년이 안 된 1789년에 일어났기 때문에 더 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프랑스 부르봉(Bourbon) 왕가의 왕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시민들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당하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점도 이러한 평가를 뒷받침한다. 부르봉 왕조는 실질적으로 이때 몰락했다.
그런데 이 부르봉 왕조의 이름이 살아있는 곳이 있다. 그것도 저 멀리 대서양 건너에 있는 미국에서다. 바로 술 ‘버번위스키’(Bourbon Whisky). 버번위스키는 옥수수(51%)를 사용해서 만드는 위스키로, 새 오크통에서 숙성해야 하는 미국 스타일의 위스키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칭호는 생뚱맞게도 부르봉 왕조에서 왔다. 프랑스가 미국의 독립혁명을 도와준 최고의 도우미였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변변한 무기 없이 영국을 상대로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독립전쟁은 영국이 미국에 공업 시설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시작됐다. 여기 특별한 우군이 등장하니, 바로 프랑스다. 프랑스는 미국에 적극적으로 무기와 물자, 그리고 군인들을 보냈다. 그리고 미국은 영국에 승리한다.
프랑스가 미국 독립군을 도와준 이유는 간단했다. 프랑스는 영국을 상대로 미국과 인도 등에서 치열한 식민지 쟁탈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 여기에 18세기의 세계대전이라고 불리는 ‘7년 전쟁’에서 프랑스는 영국에게 진다. 그 결과 프랑스는 당시 뉴프랑스로 불렸던 캐나다의 퀘벡 지역과 인도에서의 지배권을 영국에 빼앗긴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영국 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막아야 했다.
독립전쟁에서 이긴 미국 정부는 프랑스 부르봉 왕조에 감사하는 뜻으로, 1785년 토머스 제퍼슨의 제안을 받아 버지니아 서부의 광대한 지역을 ‘부르봉’(Bourbon)이라고 칭한다. 현재의 켄터키주 버번 카운티의 시작이다. 프랑스의 왕조가 위스키의 명칭으로 다시 되살아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버번위스키가 제대로 나오게 된 것은 1789년. 미국에서 최초의 헌법이 발효되고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해다. 하지만 이 해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던 해이기도 하다. 공교롭게 기념비적인 버번위스키의 탄생 연도는 부르봉 왕조의 몰락을 알린 해가 된 것이다.
‘버번’이라는 이름은 켄터키주에만 있지 않다. 뉴올리언스에는 버번 스트리트도 있다. 한때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나폴레옹이 미국에 팔아버린 루이지애나 등은 루이 14세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렇게 보면 부르봉 왕조에서도 괜찮은 장사가 아니었느냐는 생각도 든다.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교수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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