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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폭로→무고 피소→무죄… 6년 만의 ‘명예회복’

입력 : 2020-09-17 13:59:54 수정 : 2020-09-17 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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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성폭행 무혐의라고 고소까지 ‘무고’ 단정해선 안 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세계일보 자료사진

‘성폭행 혐의 고소 → 무혐의 처분 → 되레 무고 혐의로 피소 → 1·2심 징역형 →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

 

30대 여자 대학원생 A씨가 지난 2014년부터 약 6년간 겪은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핵심만 뽑으면 이처럼 한 줄로 요약하는 게 가능하지만 A씨가 실제로 겪은 상황은 끔찍하기만 했다.

 

여성 제자가 남자 교수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 으레 그렇듯 ‘교수와 사이가 틀어지니 괜히 태도를 바꾼 것 아냐’ 하는 주위의 편견 섞인 시선에 시달려야 했다. 수사기관의 무혐의·불기소 앞에선 무력감과 더불어 우리나라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절망감이 들었다. 무고 혐의로 맞고소를 당해 하급심에서 유죄가 선고됐을 때에는 ‘내가 전과자는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그간 겪은 마음의 상처를 어느 정도 치유할 수 있게 됐다.

 

A씨의 시련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원생이던 A씨는 2014년 1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교수 B씨가 ‘박사과정 지도교수’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을 14회에 걸쳐 성폭행했다며 B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조사는 A씨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선 A씨는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날 범행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범행 날짜를 여러 차례 번복하는 등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수사기관으로부터 신빙성을 의심받았다.

 

A씨는 “B씨가 강압적으로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범행 시기 전후로 두 사람이 호의적으로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도 확인됐다. 이를 들어 B씨가 “강압은 없었다”고 반박하자 A씨는 ‘그루밍’ 성범죄라고 또 말을 바꿨다. 그루밍이란 가해자가 피해자와 돈독한 관계를 형성해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B씨는 검찰에서 무혐의에 따른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그 즉시 A씨를 무고 혐의로 맞고소했다. ‘A씨가 없는 말을 지어내 결백한 나를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는 취지다.

 

1심은 A씨의 무고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은 ‘A씨의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해 형량을 되레 징역 1년에 집유 2년으로 올렸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최근 A씨한테 징역형을 선고한 하급심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대전지법 항소부로 돌려보내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A씨의 강간 피해 주장이 위력 행사의 정황을 다소 과장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고소의 근거가 된 상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며 “일부 고소 내용이 사실이 아니어도 고소 내용을 과장하는 것에 그쳤다면 무고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와 관련,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성폭행 혐의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고소까지 무고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며 “무고죄로 처벌하려면 신고 내용이 허위라는 점이 적극적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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