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부처 가교 역할에서 변질
준고위급… 대다수가 여당 출신
장관 누구냐에 따라 권한 막강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서모씨의 군복무 관련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서씨가 카투사로 복무하던 당시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근무했던 A씨가 서씨의 평창동계올림픽 통역병 차출을 해당 부대 측에 요청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 장관 정책보좌관이 민원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2002년 대선 직후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에서 만들었다. 장관의 국정 업무를 돕고 공직 사회 개혁을 보좌한다는 것이 신설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 운용 과정에서 주로 당파성이 강한 정치권 인사들이 장관 정책보좌관에 배치되면서 신설 취지를 퇴색시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10일 세계일보 취재에 따르면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18개 부처의 장관 정책보좌관 39명 중 85%가 대선캠프·코드·민주당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출신 장관은 대체로 국회 보좌관을 정책보좌관으로 기용했다. 추 장관의 정책보좌관도 의원 시절 비서관 출신이다. 정책보좌관은 주로 여당 보좌관 출신이다. 해당 상임위 의원실에서 잔뼈가 굵은 보좌관이 많다. 모시던 의원이 장관이 되면 부처로 자리를 옮기는 식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의원 출신 장관이 아니라면 보통 BH(청와대)에서 내리꽂는다”고 귀띔했다.
정책보좌관은 부처 조직도상 특정부서에 속하지 않는다. 비서실처럼 별도로 빠져 있다. 급수는 2급 또는 3급으로 준고위급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장관이 누구냐에 따라서 정책보좌관이 해당 부처의 차관 못지않은 실권을 행사하는 경우도 있다.
A씨의 민원 사례가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여당과 정부 부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당 출신 정책보좌관의 위상 때문이다.

각 부처에도 국회를 상대하는 ‘대관’ 담당자가 있지만 영향력은 제한적이어서 주요 민원은 장관에게 직보할 수 있는 정책보좌관을 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장관에게 직접 민원을 넣어야 할 때는 당 출신 정책보좌관에게 연락한다”고 말했다. 이 보좌관은 “반대의 경우도 있다. 가령 여당에서 민감한 자료 제출을 요구할 때 장관 정책보좌관이 직접 연락이 와서 양해를 구한다”고 말했다. 장관 정책보좌관이 여당과 부처 사이의 정책 조율뿐 아니라 이해관계를 중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정책보좌관의 업무 범위는 제각각이다. 의원 출신 장관을 따라간 정책보좌관은 부처의 정책이 정권의 업무 추진방향에 맞도록 제어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공무원이나 교수 출신 장관일 때에는 정책보좌관의 역할은 부처와 국회의 관계를 조율하는 정무 쪽에 방점이 찍힌다. 문재인정부에서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B씨는 통화에서 “장관은 정무직이고 부처의 과제 중에 국회를 통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며 “장관이 정치권에 연줄이 없거나 부처 대관업무 담당자는 만나는 범위에 한계가 있다 보니 정책보좌관의 정무 역할이 더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B씨는 “추 장관 아들 건과 같은 그런 민원이 들어온다. 그런데 민원을 실제 실행하는 것과 듣는 걸로 끝나는 건 별개의 문제”라며 “설령 통역병 파견 등이 이뤄지지 않았더라도 당대표실 민원을 받고 정책보좌관이 추진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군 관계자는 “과거 정부의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은 무난하고 조용히 일을 했다. 송 전 장관 시절처럼 정책업무에 개입하거나 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며 “송 전 장관의 정책보좌관들이 유별나게 굴어도 정권 초기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전문성 논란도 제기된다. 한 경제 부처 관료는 “장관이 정치권에 인연이 없어서 여권 실세 보좌관 출신이 정책보좌관으로 왔는데 해당 부처 이력이 없어서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 시절의 송현석 정책보좌관은 이념 편향 조사 등으로 갈등을 야기하다 청와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뒤엔 여당 정책위 전문위원·청와대 행정관 등으로 가거나 의원실 보좌관으로 복귀한다. 정책보좌관 경력을 발판 삼아 선거에 출마하는 이도 많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책보좌관의 역할이 재정립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청와대나 부처 자리를 거쳐서 출마하는 회전문 인사가 어느 정권에서나 벌어지는데 이를 막는 것은 법적으로 쉽지 않으니 정치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며 “정책보좌관은 말 그대로 장관의 정책을 보좌해야 하는데 정무적인 역할을 하는 수행비서처럼 굳어지고 있다. 취지에 걸맞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형창·박수찬·박영준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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