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기업 2분기 빚 69조 ↑
영업손실 보상 지원 의견 대두
활기 넘쳤던 먹자골목 적막감 가득
명동·강남 등 곳곳 ‘임대’ 팻말 늘어

인적이 뚝 끊긴 거리엔 가로등과 가로수가 도시의 밤을 지켰다. 이따금 배달용 오토바이가 도회지 골목의 정적을 깨웠다. 오히려 늘어난 듯한 고양이와 비둘기 출몰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밤 9시 통금’이 빚은 풍경이다. 장마와 태풍보다 더 두려운 코로나19 위기감에 도시가 멈췄다.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이어진 지루한 이상기후 현상까지 더해지며 자영업자들이 하루하루 줄어드는 매상으로 앓고 있다. 일부는 아예 폐업 직전까지 내몰리고 있다. 예년 같으면 민족대명절 추석을 앞두고 특수를 기대할 법하지만, 올해는 잠시라도 이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규모 음식점, PC·노래방 업주 등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의 9월’이다.
2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전통시장 체감경기지수(BSI)는 전월에 비해 6.5포인트 하락한 49.2를 기록했다. 5월 이후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공단은 매월 18∼22일 전통시장 1300곳과 소상공인 2400곳을 대상으로 경기 동향을 조사하는데, BSI가 100 이상이면 경기가 호전됐다고 보는 응답이 많다는 뜻이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다. 이번 조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강화 조치가 전국으로 확대 적용된 23일 이전 실시한 것이라서 앞으로 나올 수치는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영업자들은 빚을 늘려 근근이 버텨가고 있다. 2분기 기업·자영업자 대출금 잔액이 사상 최대폭인 69조원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0년 2분기 중 예금취급기관 산업별대출금’ 현황에 따르면 자영업을 비롯해 산업 대출금 잔액은 1분기 말보다 69조1000억원 증가한 1328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서비스업에서만 47조2000억원 늘었다. 업종별로는 도소매업 대출이 12조4000억원으로 가장 많이 늘었다.
자영업자들에게 빚은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일부 음식점에서 운영난에 숨통을 틔우려 배달 영업을 모색하지만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 언택트(비대면) 업종을 비롯한 일부가 반짝 호황을 누리기는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숨 쉴 힘조차 없는 이들에게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듯,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처방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를 위한 임대료 감면 유도를 위한 세제 혜택 등 지원 대책 강화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소상공인들은 영업 손실 보상에 준하는 직접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날 논평을 통해 “서울·부산 등에서 최대 140만원까지 시행한 소상공인 생존자금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월세 400만원인데 손님 하루 한 테이블”
“두 달 전 700만∼800만원이던 주말 매출이 지난주엔 50만원이 채 안 되더라고요. 예약은 모두 취소됐고, 대출 이자는 한 달에 300만원 정도 들어갑니다. 요즘엔 비명지를 힘조차 없어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시행된 사흘째인 1일 밤 인천 계양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홍민호(가명) 사장의 하소연이다. 홍사장은 “광복절 이후 식당 매출액이 90% 감소했다”며 “이 상태로 1∼2개월 더 가면 우리뿐 아니라 주위 가게 절반이 문을 닫을 판”이라고 전했다.
상황은 다른 곳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오후 8시 40분쯤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대 인근 먹자골목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종대(55)씨는 점포 밖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는 “오늘 한 테이블 손님을 받았다”며 “월세가 400만원인데 저녁 7시쯤 한 테이블 받아 2만4000원 매출 올린 게 전부”라고 푸념했다. 김씨는 길거리에 세워둔 ‘에어라이트(풍선 입간판)’를 접으며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기간엔 장사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영업제한 시간인 밤 9시가 되자 인근의 음식점은 불이 모두 꺼졌고, 상권은 적막감이 감돌았다. 평소 이곳은 저녁시간이면 대학생과 직장인, 인근 아파트 주민 등이 몰려 활기를 띠었다. 2.5단계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자영업자들은 다시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벼랑 끝으로 몰린 자영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소상공인들이 다시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직장인들의 재택근무까지 더해져 관공서와 금융권, 기업 등이 몰려 있는 상권은 피해가 더욱 크다. 사실상 ‘점포 폐쇄’ 수준이다.
업계는 이번 조치로 자영업자 등이 사실상 저녁 장사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소비심리 위축이 불가피해 저녁 시간대뿐 아니라 전 시간대에서 고객이 급감할 것이라면서 울상이다.
2일 오후라고 해서 전통시장 분위기는 밤풍경과 달라보이지 않았다.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올해로 15년째 국밥집을 운영하는 박모(55)씨는 “밤에 장사가 안 돼 낮에 나와 봤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낮과 밤을 거꾸로 사는데, 한참 장사할 시간에 문을 닫아야 한다고 하니 당분간 영업을 아예 중지해야 할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요식업계뿐 아니라 보습학원계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서울 송파구에서 미술학원을 운영 중인 조모(40) 원장은 거리두기 2.5단계 조치가 한 달 이상 이어지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조 원장은 “최근 받은 소상공인 지원금(150만원) 등으로 9월은 버틸 수가 있겠는데 10월부터는 대출을 알아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요즘 매출이 지난 주의 20% 수준이라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한 순댓국밥집 직원은 “매출이 줄면 직원부터 자르는데 이미 2명 중 1명이 그만둔 상태”라며 “얼마나 더 이 곳을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60% ‘거리두기 강화’ 반대… “대책 시급”
서울 이태원과 명동, 강남 등 주요 상권에는 ‘임대’ 팻말을 내건 점포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역대 최장 기간 이어진 장마로 여름휴가철 특수마저 사라졌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에 진입하면서 하반기 자영업 경기를 어둡게 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달 27일부터 전날까지 도소매, 음식, 숙박, 기타 서비스업 등 소상공인 업장 500곳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소상공인 인식 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61.4%가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이 불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38.6%는 “3단계 격상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계속되는 경기불황에 자영업자 숫자는 감소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국내 자영업자는 총 554만8000으로, 지난해 7월(567만5000명)보다 12만7000명(2.2) 줄었다. 이 중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134만5000명)는 지난해 7월(152만명)보다 17만5000명(-11.5%) 줄어들며 감소 폭이 더욱 커졌다. 지난해에는 월평균 11만4000명 감소(전년 대비)했지만, 올 들어서는 감소 폭이 17만6000명(1~7월 평균)으로 확대됐다. 직원 없이 혼자 일하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월평균 8만1000명(전년 대비)이 늘었는데, 올해엔 10만2000명으로 증가 폭이 확대했다.
한국외식업중앙회는 최근 긴급 성명을 내 “피해 소상공인 업종에 대한 임차료·인건비 지원, 세금 감면, 전 국민 대상 긴급재난지원금 조속 지급 등 구체적인 특별대책을 속히 시행하라”고 요구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강요할 순 없겠지만 건물주들이 20∼50 사이에서 임대료를 감액해주는 ‘제2의 착한 임대인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며 “지방자치단체는 50만∼100만원 수준의 긴급생계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주 소상공인 매출, 2월 말 수준 ‘뚝’
“매출이 문제가 아니라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2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서 유튜브 편집 등 소규모 MCN(다중 채널 네트워크) 회사를 운영 중인 김모씨는 “코로나19 사태 위기감이 최고조였던 2월 당시보다 요즘의 매출이 더 줄어들었다”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e스포츠 관련 오프라인 행사와 유튜버의 광고 등을 대행했던 김씨는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으로 행사 자체가 ‘씨가 말랐다’”고 말했다. 최근 김씨는 가산디지털단지내 위치해 있던 40평 정도의 사무실을 정리하고 근처인 대림동 10평 남짓한 오피스텔로 회사를 옮겼다.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음식점은 물론 김씨처럼 일반 자영업자들도 코로나19 사태에 힘들어하고 있다. 그의 사례는 특별한 게 아니다. 이날 한국신용데이터에 따르면 전국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유지되고, 수도권에서 30일 2.5단계가 시행된 8월 마지막 주(24~30일) 전국 소상공인 사업장 평균 매출은 크게 줄었다. 지난해 8월 마지막 주(8월 26일~9월 1일) 매출을 1로 보았을 때 0.75에 불과했다. 전국 소상공인 매장의 카드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75%에 불과했다는 의미다. 이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소상공인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던 지난 2월 마지막 주(2월 24일~3월 1일) 0.71을 기록한 이후 최저 수준이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직격탄에 노출된 서울 지역의 소상공인 카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0.68 수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았다. 이 밖에 광주(0.74), 전남(0.74), 경기(0.75), 대전(0.76), 충북(0.77), 충남(0.77), 강원(0.77), 인천(0.78) 지역 소상공인 카드 매출도 작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제주와 강원도는 여름 휴가철을 맞아 관광객이 몰리면서 8월 중순까진 소상공인 매출 감소 폭이 다른 지역보다 작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의 영향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타인과의 만남을 지양하는 문화가 확산됐다”며 “수도권에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끝난다고 해도 소규모 스타트업 기업 등 소상공인 매출에 끼치는 영향은 일정 기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우중·김희원·김건호 기자, 김기환 유통전문기자, 인천·울산=강승훈·이보람 기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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