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명 조식은 퇴계 이황과 동갑이다. 연산군 7년, 1501년 조식은 진주 삼가현에서, 이황은 안동 예안에서 태어났다. 남녁 남(南) 어두울 명(冥). 진흙탕으로 변한 정치가 보기 싫어 ‘은거의 뜻’을 담은 남명을 호로 삼은 걸까. 남명은 ‘장자’에 나오는 ‘남쪽에 있는 큰 바다’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사림의 쌍벽을 이루는 거유(巨儒)다. “경상 좌도에 퇴계가 있다면 우도에는 남명이 있다”고 했다. 낙동강 동쪽은 좌도, 서쪽은 우도다. 서로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서신은 오갔다.
이황이 보낸 글, “공은 물소뿔을 태우는 명철함이 있지만 저는 동이를 인 듯해 절로 탄식을 합니다.” 무슨 뜻일까. ‘물소뿔을 태워 물속을 비추어 본다(燃犀照渚·연서조저)’는 것은 사리를 깊이 궁구하는 지혜를 이르는 말이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면 하늘을 볼 수 없으니, 세상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존경과 겸양이 물씬 묻어난다. 조식이 보낸 글, “요즘 공부하는 자들은 물을 뿌리고 비질하는 절도도 모르면서 입으로는 천리를 담론하며 헛된 이름이나 훔쳐 남을 속이려 합니다.”
조식의 삶은 어땠을까. 30대 이후 모든 벼슬자리를 거절했다. 평생 학당과 암자에서 공부하며 강학을 했다. 마음이 명경처럼 맑다는 말을 들었다. 이황과 더불어 ‘경(敬)’을 최고 덕목으로 삼은 지행합일의 스승이다. 제자들이 임진왜란 때 목숨 걸고 왜적에 맞선 것은 소리(小利)를 멀리하는 그의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이 말했다. “조식 선생이 김해 인근으로 옮겼고 그곳이 지금의 진해 웅동이다. 조국 전 장관의 선조다.” 조식의 후손은 쏴붙였다. “억지이자 모독”이라고. “족보를 다시 들여다봤지만 조국 전 장관과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고 했다. 조국 전 법무장관 우상화 발언은 본전도 못 찾았다.
왜 모독으로 느낀 걸까. 조선 대유의 삶은 수정알처럼 빛난다. 권력을 이용해 사익을 챙기지 않고, 자식 출세를 위해 문서를 위조하지 않고, 제 편의 비리에 눈을 감지 않았다. 조국씨는? 다르다. “이름이나 훔쳐 남을 속이려 하는가.” 남명 조식의 말이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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