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호사시험) 발표 이후 너무 괴롭다. 나도 모르게 자해를 했고, 몇 시간 만에 온몸이 멍투성이가 됐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온라인 커뮤니티 ‘로이너스’에는 최근 변호사시험 5회 연속 탈락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이 같은 글을 게시했다. 지난 24일 제9회 변호사시험 합격자가 발표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합격자 수는 1768명으로 직전 대비 약 4.6% 증가했다.
현행법상 변호사시험은 로스쿨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5년 내에 5회만 응시할 수 있다. 한정된 기회를 날려 영영 법조계에 진입할 수 없게 된 이들을 소위 ‘오탈자’라 부른다. 해당 글 게시자는 “자살충동이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전개돼 참기가 어렵다. 응급실이라도 가면 나을 수 있느냐”며 심리적 도움을 요청했다.

매해 변호사시험 전후로 예비 법조인들의 ‘양성소’가 멍들고 있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사립대 로스쿨 재학생은 변호사시험을 2개월 앞두고 교내 기숙사 옥상에서 투신했다. 그는 못다 핀 꽃이 됐다. 법조계에선 로스쿨 학업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상승곡선인 합격 커트라인과 연쇄적인 과잉 경쟁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상흔’은 살아남은 자에게도 유효하다.
수험생들 사이에서 ‘로줌마’로 통하는 제주대 로스쿨 출신 박은선씨는 이번 시험에서 재시 끝 합격의 기쁨을 안았다. 그는 지난 28일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신규 법조인들의 가슴에 부끄러움을 안겨주는” 법조계에 분노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는 “출산을 했어도 암투병을 했어도, 변호사시험을 다시는 응시할 수 없도록 하는 평생응시금지제도 등은 위헌성이 너무도 짙게 배인 참혹한 제도”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반면 ‘고시 낭인’의 폐해를 줄이고자 도입된 로스쿨이 무제한 응시로 전환된다면 의미가 퇴색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소위 ‘오탈’정도 되면 수험생 본인이 적성 문제를 다시 고민해 봐야 한다”며 “응시 기회에 제한을 두지 않으면 로스쿨 체제 자체가 붕괴되는 일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사법시험으로 회귀하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기성 법조인들도 ‘오탈자’들의 구제책을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해줘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최근 판결에 따르면 ‘오탈자’ 수험생은 응시 기회를 다시 얻기 위해 다른 로스쿨에 재입학 하더라도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없다. 일례로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판사 박양준)는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변호사시험 응시지위 확인소송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이는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방통대 로스쿨이 추후 도입됐을 시에도 인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변호사는 “법조인 자격 취득이 로스쿨로 사실상 일원화된 구조에서 기회를 원천 박탈하는 건 가혹한 면이 있다”면서 “수험생에게 다양한 길을 열어주면 현행의 시험 만능주의식 교육구조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안병수 기자 r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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