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어 패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올해 민주당 대선주자로 사실상 확정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지지를 선언했다.

◆힐러리 “바이든 같은 대통령이 필요한 순간”
28일(현지시간) 폴리티코 등에 따르면 클린턴 전 장관은 이날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위기 속 여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바이든 전 부통령과 함께 개최한 온라인 행사에서 “나는 당신(바이든)이 우리 대통령이 돼 달라고 요청한 많은 사람에게 내 목소리를 더하고 싶다”며 “지금은 조 바이든 같은 리더, 대통령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밝혔다.

클린턴 전 장관은 “TV에 나와 대통령 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대통령이 우리에게 있었더라면 얼마나 달라졌을지 생각해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응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과학에 귀 기울이고, 허구보다는 사실을 중시하며, 일종의 연민과 배려를 보여주는 대통령을 가졌더라면 얼마나 달라졌을지 바로 지금 생각해보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것이자 조 바이든이 평생의 경력을 통해 입증해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나라면 지난 1월부터 경고음을 울려온 정보보고를 매일 읽었을 테지만, 우리가 늘 하던 일을 이 대통령(트럼프)은 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산 위험에 대한 정보기관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한 점을 꼬집기도 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힐러리를 “바로 지금 미국 대통령이 돼야 할 여성”이라고 소개하며 화답했다.

◆샌더스·오바마 지지 이미 확보…“빌 클린턴과 미셸 오바마만 남았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지난달 ‘슈퍼 화요일’과 ‘미니 화요일’에서 압승한 이후 경선 경쟁자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4월13일), 2009년부터 8년간 호흡을 같이 맞췄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4월14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4월15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4월27일)에 이어 이날 클린턴 전 장관의 공식 지지까지 확보하면서 두터운 당내 지지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클린턴 전 장관과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층이 막판까지 분열하면서 대선 패배를 자초했던 2016년의 전철을 피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제 민주당 고위인사 중 바이든 지지를 아직 표명하지 않은 유이한 인물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뿐이라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AP통신은 바이든 전 부통령이 샌더스, 워런 등 당내 진보파의 지지까지 확보한 점을 언급하며 “바이든을 둘러싼 신속한 단합은 4년 전 힐러리가 좌파 유권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고 전했다.
◆성추행 의혹 불식에 도움 될까
바이든 전 부통령으로서는 1993년 상원의원 시절 당시 사무보조원 타라 리드를 성추행했다는 폭로가 나온 뒤여서 클린턴 전 장관의 공식 지지 선언이 더욱 반가운 상황이다. 폴리티코는 “클린턴의 지지는 바이든이 러닝메이트로 여성을 선정할 계획을 하는 가운데 나왔다”며 “여성 러닝메이트는 바이든의 성추행 혐의와 관련해 즉각적 정치적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의혹을 둘러싼 긴장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바이든 전 부통령은 피츠버그의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미셸(오바마)에게 의향이 있다면 그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당장 그를 받아들이겠다”고 답해 미셸 오바마가 바이든의 러닝메이트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다만 미셸 오바마가 공직에 관심이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은 것이 변수다.

◆트럼프 측 “주류 기득권 세력 결탁” 평가절하
트럼프 재선캠프 측은 클린턴의 바이든 지지 선언을 ‘워싱턴 주류 기득권 세력의 결탁’으로 묘사하며 의미를 축소했다. 트럼프 측 선거대책본부장인 브래드 파스케일은 성명을 내고 “조 바이든과 힐러리 클린턴이 함께하는 것보다 더 큰 민주당 기득권층의 결집은 없다”며 “두 사람은 수십 년간 워싱턴의 늪에서 함께 활동하며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되는 것을 막는 계획을 꾸며왔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이 워싱턴 기득권 정치의 대표적 인물임을 상기시키면서 대안 아웃사이더로 트럼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파스케일은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녀(힐러리)를 (2016년 대선에서) 한번 이겼고, 이제는 그녀가 선택한 후보를 꺾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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