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김홍모, 윤태호, 마영신, 유승하가 한데 모였다. 출판사 창비가 최근 펴낸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를 통해서다.
민주화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도, 필치도 제각각인 네 작가는 역사적 사실에 만화적 상상력을 더해 제주 4·3과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이란 역사의 물줄기를 이어 나간다. 올해는 4·19 60주년, 5·18 40주년이란 점에서 이번 작업은 더 뜻깊다.

지난 7일 유튜브 채널 TV창비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들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윤태호 작가는 “더 나이 먹기 전에 해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했다”며 “돌아가신 장인어른을 통해 해방과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이 근대사를 어떻게 헤쳐 나왔는지 묘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사일구’ 주인공 김현용에 장인의 모습을 투영했다.

5·18을 다룬 ‘아무리 얘기해도’의 마영신 작가는 “진실을 전달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작업이었다”고 털어놨다. 마 작가는 1980년과 2020년을 오가며 일명 ‘광수 사진’, 극우 성향 커뮤니티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를 통해 5·18 왜곡과 폄하가 끊이지 않는 현실을 꼬집는다. ‘아무리 얘기해도’란 제목대로 말풍선이 많지 않다.
‘1987 그날’의 유승하 작가는 “6월 항쟁 참가자 중 한 명이었다”며 “객관화가 안 돼 정신적으로 힘들었는데 끝내고 나니 마음이 정리됐다”고 돌아봤다.

제주 4·3을 다룬 ‘빗창’의 김홍모 작가는 “72년이 지났지만 4·3에 대해 많이들 모른다”고 안타까워했다. 제주에 사는 김 작가는 4·3을 일제 강점기 제주 해녀들의 항일 시위와 연결 지었다.
“당시 제주도민이 30만명이었는데 3만여명이 국가 폭력에 의해 학살을 당했습니다. 제주의 모든 시골 마을에서 적어도 40명, 많게는 400명이 돌아가셨어요. 가해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미군정은 사과도, 책임 인정도 하지 않았고요.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해방 정국의 제주도민들이 어떤 세상을 꿈꿨길래 학살당했는지를 독자들에게 중점적으로 전달하려 했습니다. 그들이 외친 구호는 완전한 자주독립과 통일이었어요. 이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빗창은 물질할 때 전복을 따는 도구인데 해녀 1만7000명이 일제에 맞서 싸운 항쟁의 도구이기도 했어요. 빗창이 해녀란 생각이 들었죠.”
윤태호 작가는 장인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 갔다.
“결혼 전 인사를 드리러 찾아뵀을 때 혼자 방으로 들어가셔서 따라 들어갔습니다. (광주 출신이라) 지지자일 거라 생각하시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30분간 험담하셨어요. 대통령이 되시기 전이었죠.

장인은 1930년에 태어나 전쟁 때 대학을 다니고 학도병으로 참전해 총을 맞고 의병 제대를 하셨어요. 한번은 ‘군사 정권 때도 의병 제대에 대해 어떤 보상도 안 해줬는데 김대중 대통령이 되고 난 뒤 한 달에 8만원씩 들어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혼 전 말씀에 대해 화해 같은 제스처를 하신 게 아닌가 싶어 감사했어요. 국가가 잊지 않았다는 데 감사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유승하 작가는 박혜정(1965∼1986) 열사의 재조명을 역설했다.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가 이야기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데 감정 이입을 가장 많이 한 인물은 박혜정 열사입니다. 당시 대부분 회색분자의 죽음이라고 했는데 박혜정 열사는 결코 회색분자가 아니에요.”

작가들은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로 토론의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지금과 비교해 토론의 주제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실제 사건을 다룰 땐 작업이 끝난 뒤에도 괴로움이 많습니다. 제대로 다뤘는가, 열심히 해도 만족하기 어려운 작업이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지만 이런 작업 기회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 주고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윤태호)
“학교에서 토론도 하고 논쟁도 했으면 좋겠습니다.”(김홍모)
시리즈를 기획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남규선 이사는 “오래된 민주화 운동을 젊은 세대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됐다”면서 “훌륭한 작가 분들이 1년 이상 붙들고 고군분투해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강조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사진=창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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