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의 정확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총선 결과에 대한 여론조사 예측은 1996년 15대 총선부터 2016년 20대 총선까지 계속해서 큰 오차를 보여 왔다. 그에 따라 여론조사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계속 우위를 점하고 있자, 일부 야권에서는 여론조사 조작론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여론조사, 특히 선거 전에 실시된 조사가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리라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다. 모든 조사에는 각종 오차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학적으로 규정되는 표본 오차 외에도, 표본 선정 과정에서의 오차, 낮은 응답률로 인한 표본의 대표성 저하에 따른 오차, 그리고 자신의 의견과 의도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숨기려는 응답자들로 인한 측정 오차 등 각종 오차가 발생할 여지는 수없이 존재한다. 실제로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후보가 사전 여론조사에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당선된 것은 소위 ‘샤이(shy) 보수’들이 자신의 속마음을 조사에서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사전조사의 경우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거나 투표일 직전에 마음을 바꾸는 부동층 유권자도 많기 때문에, 그 정확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사전조사보다 출구조사 결과를 더욱 신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대선이나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보다 총선 결과 예측은 더욱 어려운데, 선거구 수가 워낙 많은 데다가 몇 표 차이로 당락이 바뀌는 단순다수제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례대표제 중심의 유럽 국가에서는 상대적으로 여론조사 예측의 정확도가 높은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실제 선거 결과와 다를 수도 있고, 이러한 현상이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 문제점이 자주 논의되는 것은 많은 여론조사기관의 영세성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대형 조사기관을 제외한 많은 영세 조사기관은 조사단가가 워낙 낮기 때문에 제대로 된 표본 선정과 조사 절차를 따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유선전화 조사가 표본의 대표성을 저하해 조사 결과를 왜곡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자, 최근에는 많은 조사기관이 안심번호를 이용해 유무선 전화를 병행하여 조사하고 있다. 따라서 응답자 선정에서의 대표성 문제는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 하지만 낮은 응답률로 인한 대표성 왜곡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응답자의 특성과 비응답자의 특성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조사비용을 낮추기 위해 표본 수를 줄이는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런 문제는 공개되고 표본오차 계산에 반영된다는 점에서, 유선 조사나 낮은 응답률로 인한 숨겨진 대표성 왜곡 문제보다는 덜 심각하다.
사실 여론조사의 가장 큰 기능은 선거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데 있지 않다. 여론조사가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바는 주요 이슈에 대한 유권자의 의견과 그 흐름을 대략 파악해 정책 결정 과정에 고려하는 데 있다. 그리고 학자들이 유권자의 행태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 따라서 여론조사가 선거 결과와 다르다고 해서 여론조사 무용론을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여론조사는 말 그대로 조사일 뿐이며, 참고자료이다.
물론 여론조사 결과를 의도적으로 정략적으로 활용하는 일은 방지해야 한다. 특히 선거 기간 동안 여론조사 공표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감독과 관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차범위와 응답률, 표본 수, 조사방법 등을 공표하는 것을 넘어서 지나치게 응답률이 낮은 조사 결과의 공표를 적어도 선거 기간에는 금지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여론조사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이해, 그리고 과학적 여론조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퍼져 충분한 예산과 시간을 가지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여론조사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여론조사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이나 무용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김욱 배재대 교수 정치학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