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란을 보고 새벽을 알리기를 바라고, 새총의 탄알을 보고 새 구이를 찾는다(見卵而求時夜 見彈而求?炙).”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말이다. 계란을 보면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 뒤 자라서 닭이 돼 새벽을 알리기를 바라며, 새총의 탄알을 보면 이것을 쏴 새를 잡아서 구워 먹을 생각부터 한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결과를 예단하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이다. 여기서 나온 한자성어가 견란구계(見卵求鷄)다.
비슷한 영어 속담도 있다. “Don’t count your chickens before they are hatched.” ‘부화하기도 전에 병아리를 세지 말라’는 뜻이다. 우리 속담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와 유사하다. 상대편의 속도 모르고 지레짐작으로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경솔하게 행동함을 이르는 말이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이 그제 자신의 트위터에 한 트위터 이용자가 올린 ‘김칫국 마시다’ 문장이 적힌 사진을 리트윗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에는 ‘김칫국 마시다’는 ‘알이 부화하기 전 병아리를 세다’란 의미라는 설명이 담겼다. 한·미 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잠정 타결까지 언급한 우리 정부를 겨냥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1일까지만 해도 정부 안에선 “오늘 협상 타결 발표가 나올 수 있다”는 낙관론이 제기됐지만, 미 국무부는 이튿날 “협상은 끝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협상이 잠정 타결됐는데 미국이 막판에 입장을 바꿨는지, 한국이 미국 측 태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방위비 협상을 직접 챙겨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잠정 합의안을 거부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막판 압박전술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도 돈으로 판단하는 인물이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태가 아무리 심각하다고 해도 트럼프의 스타일상 우리 입장이 크게 반영된 합의안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섣부른 낙관론에 기대어 한·미동맹의 앞날이 걸린 외교 현안에서 김칫국부터 마셨다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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