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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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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02 23:34:24 수정 : 2020-04-02 23: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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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현대자동차에 5조8000억원의 고배당을 요구했다. 당시 시총의 20% 수준이자 전년도 순이익의 세 배가 넘는 금액이다. 그뿐이 아니다. 엘리엇은 경쟁사의 최고경영자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현대차와 수소기술에서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 밸러드파워시스템의 로버트 랜들 매큐언이 그 대상이었다.

불과 3%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엘리엇은 주주제안을 통해 해당사항을 성공적으로 주총안건으로 상정시켰다. 주총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 해외 유력 의결권 자문사 ISS가 매큐언 후보에 대해 찬성의견을 내면서 엘리엇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김우창 카이스트(KAIST) 교수

엘리엇의 공격은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의견을 내며 무위로 끝났다. 국민연금은 단기매매차익을 노리기 어렵다. 또한 근로자들이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이기에 고용안정성 역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민연금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에 베팅한다. 단기 수익만을 노렸던 엘리엇의 제안을 국민연금이 찬성할 수 없었던 이유다. 결과적으로는 국민연금이 당시 현대차 경영진의 백기사 역할을 수행한 셈이다.

엘리엇과 현대차의 사례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연금사회주의이며 기업의 자율적인 경영활동에 가장 큰 리스크이기에 주주권 행사를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의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해외자본의 국내 우량기업에 대한 단기 수익을 노린 공격적인 주주권 행사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 명백하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과 함께 주주행동주의가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운용사 블랙록이나 중국 국부펀드운용사(CIC) 등은 스튜어드십 코드를 이미 도입하여 전 세계 주식 시장에 직접적인 입김을 가하고 있으며, 엘리엇과 같은 주주행동주의 펀드는 나날이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족벌 경영으로 우리 기업들은 지배구조에 약점이 많은 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일부의 주장처럼 주주권이나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는 것은 단기차익만을 노리는 외부자본에 우리 자본시장의 뒷문을 열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은 법과 규정, 지침에 의해 기업의 장기 성장성과 근로자의 고용 안정성을 목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대주주다. 국민연금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외부의 공격에서 대한민국의 국부를 지켜낼 방어 체계인 셈이다. 국민연금이 행사할 수 있는 주주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올 외부자본에 대응할 최소한의 수준이다. 공격은 쉽고 방어는 어려운 법인데, 최소한의 도구는 손에 쥐여 줘야 할 것 아닌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경영자 입장에서는 새롭게 시어머니가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주권 관련 의사결정의 주체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정부의 입김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 역시 충분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관련 규정을 손보고, 위원회의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면 될 일이다.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포기하게 되면 가장 이득을 볼 곳은 단기수익만을 추구하는 약탈적 자본임을 인식해야 한다.

 

김우창 카이스트(KAIST)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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