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투사(KATUSA)는 미군에 배속된 한국 인력(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이란 뜻이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일본 점령 임무를 수행하다가 급하게 한국으로 파병된 미군은 한국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결국 부대마다 일정한 숫자의 한국 군인을 배속받아 통역 등에서 도움을 받았고, 이것이 원조가 돼 지금도 주한미군에 배속돼 미군을 돕는 한국군 병력을 ‘카투사’라고 부른다.
6·25전쟁 70주기를 맞아 다양한 기념사업을 하고 있는 유엔군사령부가 카투사와 비슷한 ‘카트콤’을 소개하고 그들의 노고를 기려 눈길을 끈다.
26일 유엔사 SNS에 따르면 카트콤(KATCOM)은 영연방군에 배속된 한국 인력(Korean Augmentation to Commonwealth)을 뜻한다. 6·25전쟁 당시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유엔군의 일원으로 한국에 보냈다. 영국군은 당시만 해도 영국 자치령이던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서 보낸 병력과 합쳐 제1영연방사단(1st Commonwealth Division)을 구성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경우 영연방 회원국은 아니었으나 그들이 6·25 전쟁에 파병한 인력은 영연방군 일원으로 싸웠다.
바로 이 영연방군 부대에 배속돼 한국어 통역, 한국군과의 연락 업무 등을 수행한 이들이 카트콤이다.
유엔사에 의하면 6·25전쟁 기간 한국군 1000여명이 영연방군 부대에 배속돼 카트콤으로 활약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영국군 등과 동일한 훈련을 받고 똑같은 장비로 무장했다. 다만 그들의 봉급은 한국 정부에서 부담했다.
국방부 등에 따르면 카트콤은 영연방 사단과의 작전 협력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 ‘인해전술’을 앞세운 중공군의 대규모 공세를 격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6·25 전쟁 후에도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에 따라 카투사는 지금도 널리 알려져 있으나 카트콤은 휴전과 동시에 잊혔다. 유엔사는 “(정전협정 체결 1년 뒤인) 1954년 7월 카트콤은 정식으로 해체됐다”고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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