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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역사유적탐방]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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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20 22:11:38 수정 : 2020-03-20 22: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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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과 허균의 생가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에서는 여성 인재 영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만큼 현대사회에서는 여성의 지위도 높아지고 역할도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는 여성이 크게 차별을 받는 세상이었다. 능력이 있어도 그 자질을 발휘할 수 없었던 세상의 벽은 컸다. 그래서인지 신사임당 정도를 제외하면 떠오르는 여성이 많지가 않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이였던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의 시는 사후에 명나라와 일본에까지 알려졌다. 요즈음으로 보면 중국에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난설헌’은 호이고, 본명은 초희(楚姬)이다. 허엽의 딸로, 형제들인 허성, 허봉, 허균 모두 문장으로 이름을 날렸다. 허엽은 글공부를 가르칠 때 성별을 구별하지 않았고, 딸에게도 동기를 부여했다. 난설헌은 8세 때 신선 세계에 있는 상상의 궁궐 상량식에 초대받은 상황을 시로 표현한 ‘광한전백옥루상량문(廣寒殿白玉樓上梁文)’을 써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다양한 시 작품을 남겼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생도 짧았다. 27세로 요절한 것이다. 그녀의 시들은 허균의 노력으로 사후에 세상에 알려졌다. 허균은 친정에 흩어져 있던 누이의 시와 자신이 외우고 있던 시를 모아 ‘난설헌고(蘭雪軒藁)’를 만들었다. 그리고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에게 이 시집을 전달해, 중국에서 이 시들이 간행되도록 했다. 조선 지식인들 사이에도 “허봉과 허균이 시에 능하여 이름이 났지만 그 누이인 허씨는 더욱 뛰어났다”는 평가가 있었다.

현재 강릉 초당동에서는 허균과 허난설헌이 살았던 집을 만날 수가 있다. 경포호 동쪽 다리를 건너 울창한 소나무 군락이 자리를 잡고 있고, 솔밭 사이 오솔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타나는 기와집이 바로 이들의 생가이다. 인근에는 기념관과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평안하게 여류 시인의 향취를 접할 수 있다. 부친 허엽의 호는 초당(草堂)으로, 강릉에서 유명한 초당두부의 기원은 허엽이 두부를 만든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생가 근처의 초당두부 마을을 찾는 것도 즐거움을 더해준다.

신병주 건국대교수·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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