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로날트 D. 게르슈테/강희진/미래의창/1만7000원
의사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질병의 역사’에서 인류를 위협한 주요 전염병과 권력자의 질병에 대한 기록을 소개하고 있다. 역사적 중요 인물의 질병이 어떻게 역사의 흐름을 바꿨는지, 전염병의 대유행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소개한다. 책은 심각한 질병에 걸린 역사적 인물들이 겪은 고통의 발자취를 설명하는 한편 그 인물들이 그 질병을 앓지 않았다면 역사의 물줄기가 어떻게 바뀌었을지를 상상해 본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의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에게는 ‘건강염려증’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당시 각종 감염에 대해 극심한 공포증을 지니게 됐고 그 이후 감기에 걸린 사람과는 절대 면담하지 않았고, 자기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먼저 강박적으로 손을 씻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일찍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전쟁 방침이나 전쟁 말기 자살 결정에도 이런 생각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히틀러의 병력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역사학자와 의사는 히틀러의 건강 상태는 죽기 얼마 전까지 지극히 양호했다고 전한다.

1555년 봄. 잉글랜드의 메리 1세 여왕이 임신했다는 소식이 전 유럽의 왕정에 소문이 퍼져나갔으나 ‘상상 임신’으로 판명됐다. 여왕의 배가 불러오고 젖이 분비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증언은 분명히 있었다. 저자는 난소종으로 분비된 액 때문에 임신이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피의 메리’로 불린 메리 1세는 스페인의 왕자와 결혼했던 만큼 실제 임신해 왕위 계승자를 낳았다면 오늘날 영국인들은 스페인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결국 일찍 사망함으로써 스페인과의 연합은 무산됐고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
33세에 죽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수많은 의학자에 의해 독살설이 많이 언급되지만, 말라리아나 위염, 장염, 웨스트나일바이러스 감염 등이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많다. 인도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나 선천성 질병인 척추측만증, 심지어 지나친 음주를 죽음의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사인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지만, 그가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세계사는 크게 바뀌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대중 앞에서 늘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지만 실은 다양한 질병에 시달렸다. 애디슨병을 앓아 도카 캡슐이라는 스테로이드를 피부 조직 안으로 주입하여 치료하는 처방을 받았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도카 투여로 극심한 요통에 시달렸다. 대중에게 자신의 건강 상태를 감추기 위해 각종 약물을 달고 살았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와 함께 페스트, 콜레라, 결핵. 매독 등 한 시대를 휩쓴 무서운 질병과 그 파장에 대해서도 상세히 소개한다. 역사상 가장 많은 수의 희생자를 낸 전염병은 무엇이었을까. 중세의 흑사병 혹은 콜레라, 아니면 20세기 초반 대유행했던 스페인독감일 것이라고 추측하기 쉽다. 저자에 따르면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병은 다름 아닌 ‘결핵’이었다. 결핵으로 죽은 사람은 지난 200년 동안만 약 10억명에 이른다. 결핵은 또한 20세기 주요 사망원인 중 1∼2위를 다투는 주요 질환 중 하나였다. 20세기 초반에는 유럽에서 7명 중 1명이 폐결핵으로 사망했다고 하니 실로 무서운 병이 아닐 수 없었다. 반면 페스트가 가장 두려운 전염병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은 짧은 기간에 막대한 사망자를 냈기 때문이다. 발생 5년 만에 1800만명 정도가 사망했는데, 이는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내지 4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사회 구조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온 질병도 페스트였다는 것이다.

독감에 관한 언급도 흥미롭다. 1918∼1920 발생한 독감으로 전 세계 약 5억명이 감염되었고 적게는 2500만명에서 많게는 1억 명까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세계 인구의 약 5%에 해당하는 수치다. 스페인독감의 유행으로 예방접종과 의료기관 종사자의 안전이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스페인독감 확산 초기에 의료종사자가 많이 감염되면서 병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희생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또 14세기 영국에서는 페스트로 인구의 40∼50% 사망했으며, 노르망디 지역에서는 인구의 70%가량이 감소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당시 살아남은 자들은 사회·경제적 상황이 호전되는 이점을 누렸다는 것이다. 모든 분야에서 노동력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서유럽과 북유럽을 비롯해 유럽 내 수많은 지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했으며, 식량 부족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페스트가 번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대부분 지역은 기근과 빈곤에 시달렸다. 하지만 1352년 이후 인구수가 급감하면서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제한된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사회가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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