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라파고스제도는 남미 에콰도르에서 약 1000㎞ 떨어진 곳에 19개의 화산섬과 암초로 이뤄져 있다. 총면적 7880㎢로 제주도의 4배 크기다. 말(馬) 안장 모양의 등껍질을 가진 거북이가 많아 스페인어로 안장을 뜻하는 ‘갈라파고스’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은 500만년 전부터 외부와 차단돼 있어 거북, 펭귄, 이구아나 등 고유종이 살아가는 생태계 보고다. 살아 있는 자연사박물관으로 불리는 이유다.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이란 책을 펴내면서 학계에 널리 알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갈라파고스 지명은 4차 산업혁명이 지구촌 화두가 된 뒤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면서 다양한 파생어를 탄생시켰다. ‘갈라파고스 신드롬’이 대표적 사례다. 특정 집단이나 국가가 세계 시장이나 환경, 흐름과 단절되고 고립된 채 뒤떨어지는 정치사회적 현상을 가리킨다. 자국 취향만 좇던 일본 휴대전화가 경쟁에서 도태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일본 정부와 의회는 세계 최고 수준의 휴대전화 기술을 갖추고도 내수시장에만 기댄 채 각종 규제로 자국 산업을 보호했다. 이처럼 폐쇄적인 생태계는 외부에 노출되자마자 쉽게 허물어졌다.
미국이 일본보다 큰 내수시장을 갖고도 지금의 경쟁력을 지닌 것은 늘 세계를 지향해왔기 때문이다. 반면에 세계 최고였던 미국 자동차산업이 연비·성능보다 디자인에만 신경을 쓰다가 쇠락하는 것은 갈라파고스 신드롬의 본보기다. 외부 세계와 담을 쌓은 채 폐쇄사회를 지켜온 북한도 종종 갈라파고스에 비유된다.
지금 우리가 갈라파고스 신세다. 코로나19로 100여개국이 한국인의 입국을 제한했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갈라파고스 현상은 이미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선진국들이 혁신·개방을 앞세워 협력하는데 우리는 제자리걸음이다. 타다, 우버, 인터넷은행 등을 막아놓고 입으로만 혁신과 규제철폐를 떠들어댄다. 이 순간에도 혁신기술에 대한 갈라파고스적 규제는 우리 경제의 숨통을 죄고 있다. 세계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갈라파고스 현상을 피해갈 수 없다. 근시안적 여의도 정치는 민심의 외면을 받고 갈라파고스에 고립될 것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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