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이 밤처럼 캄캄해지고 그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남정네들은 밭에 불을 지르고 장대를 휘두르며 그들과 싸웠고 아낙네들은 향을 사다가 지신께 기도를 올렸다. 그들이 내려앉은 곳엔 잎사귀는 볼 수 없고 모두 황무지로 돌변했다.”
미국 작가 펄 벅이 소설 ‘대지’에서 메뚜기떼의 중국 농촌 습격을 묘사한 구절이다. 한 해 농사의 결실을 메뚜기떼에 빼앗기지 않으려는 농민들의 사투가 처절하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메뚜기떼의 출몰을 황제와 관원들의 백성 핍박에 대해 하늘이 내린 벌로 여겼다. 그래서 메뚜기를 벌레 충(?)변에 임금 황(皇)자를 써 황충(蝗蟲)이라 불렀다.
1870년대 미국에선 12조5000억마리의 메뚜기가 미시시피주부터 텍사스주까지 이동하며 농장들을 초토화했다. 현재 가치로 6조원가량의 피해를 냈다니 메뚜기 군단의 파괴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었다. 오죽하면 메뚜기가 가을 곡식을 먹어 치워 춘궁기처럼 된다는 뜻의 ‘황충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는 속담이 생겼겠는가.
이상 온난화 현상에 따른 부화율 증가와 천적인 조류의 감소 등 국지적인 생태계 변화로 메뚜기떼가 형성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메뚜기는 바람을 타면 하루 최대 150㎞를 이동한다. 1㎢ 규모의 메뚜기떼가 하루 3만5000명분 식량을 먹어치운다니 여간 대식가가 아니다.
최근 케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동아프리카에 메뚜기떼가 창궐해 농작물에 큰 피해를 입혔다. 케냐에선 70년 만에 최대 규모의 메뚜기떼 출현이라고 한다. 가뜩이나 기아로 허덕이는 나라들인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아프리카 메뚜기떼는 한 번 쓸고 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해서 ‘마른 쓰나미’로 불린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피해지역 주민의 영양실조를 우려해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다. 메뚜기떼와의 싸움에서 인간은 판판이 패한다. 비행기로 살충제를 뿌려 보지만 피해지역이 워낙 넓어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오리, 닭, 말벌을 대규모로 풀어봐도 중과부적이다. 뾰족한 퇴치 대책이 없다. 메뚜기떼가 첨단과학기술을 자랑하는 인간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김환기 논설위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