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밝힌 주요 추진 사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교 교사대상 입학설명회와 찾아가는 고교방문 설명회를 확대한다는 점이다. 학령인구 감소로 전문대에서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점점 폐교 위기로 내몰리면서, 학생들을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인 지원계획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도 전문대 지원에 팔을 걷고 나섰다. 교육부는 2021년부터 전문대에서도 석사학위를 딸 수 있는 ‘마이스터대’제도를 도입할 계획을 지난달 밝혔다. 지금까지는 전문대에서 학사학위만 취득할 수 있었지만, 이 제도가 도입되면 전문대 졸업 후 현장실무 경력이 있는 성인학습자는 4년제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아도 석사과정을 밟을 수 있게 된다.
전문대교협의 자구책, 교육부의 지원에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언제까지이고 정부 지원에 기댈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학생 수 감소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악화하는 대학 재정을 보완할 혁신안이 마련돼야 한다.
전문대가 나아가야 할 길을 묻기 위해 지난 6일 경기 안성시에 있는 두원공과대학을 찾았다. 전문대교협이 뽑은 ‘2019년 전문대학인’ 중 한 명인 이건호 두원공대 교수(건축설비소방과)를 만나기 위해서다. 이 교수는 지난 30여년간 차량용 에어컨에 들어가는 용적형 압축기 분야 연구·개발을 수행해 국내특허 190건, 국외특허 40여건을 획득하는 등 두드러진 연구성과를 냈다.
이 교수는 무엇보다 전문대와 기업 간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을 제시했다. 두원공대가 교수 등 고급 연구인력과 연구시설을 제공하고, 두원중공업으로부터 연구비와 생산기술, 연구원 등을 받는 안을 마련했다. 그 결과 일본에 의존했던 압축기 개발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고, 교수의 역할을 기업 연구소장까지 확장해 개발품 양산까지 책임졌다. 양산이 확정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본에 지불해야 했던 기술사용료 600억원을 절감했고, 1100억원의 수출 증대를 이뤘다. 대학은 양산 성공으로 기업 매출의 일부를 기술료로 받았다. 10여년간 약 80여억원에 이른다. 전문대가 학생 유치의 한계를 넘어 산학협력을 통해 재정적 돌파구를 마련한 것이다.
이 교수는 “향후 전문대는 학생도 문제이지만 교수도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전문대를 졸업할 학생들에 일자리를 매칭해 주는 문제를 넘어 고급 인재인 교수들도 자신의 전문성을 산업현장에 투입해야 전문대를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전문대 내에 중견·중소기업연구소를 만들고 교수가 연구소장을 맡아 개발에서 양산까지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보통의 산학협력은 기업이 교수에 개발품 설계를 요청하고 교수도 설계도를 완성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중견·중소기업에서는 막상 설계도를 받아 시제품을 만들어도, 이를 양산까지 성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산학협력이라고 해서 전문대 내에 들어온 기업들이 있지만 많은 경우 연구장소를 임대해 주거나 연구개발 자료 등을 제공받는 것에 그치고 있다. ‘진짜 협력’이 드물다”며 “‘내가 만들고 개발한 것은 내가 제일 잘 안다. 그래서 내가 판매망도 뚫을 수 있다’는 자세로 책임지는 산학협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할 일은 없을까. 이 교수는 “중견·중소기업과 교수를 이어줄 플랫폼을 만들고, 둘 사이 신뢰가 쌓일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모터 개발에 필요한 전문성 있는 인력을 구한다고 하면 정부는 각 전문대에 모터 관련 전공 교수를 파악해 이들을 기업에 연결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설계부터 실제 양산까지의 간극도 정부가 채워 줄 수 있다. 이 교수도 2003년 직접 두원공과대 내 두원기술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2008년 국산화 양산에 성공하기까지 5년 이상 걸렸다.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산학협력에 기업이 5년 이상 투자할 리 만무하다.
이 교수는 “압축기 개발의 경우 두원공대와 두원중공업이 같은 그룹 내에 있었기 때문에 서로 ‘신뢰’가 가능했다. 그러나 일반 전문대와 중소·중견기업이 연결된 뒤 5년을 기다리는 건 꿈같은 일”이라며 “양산까지 책임지는 산학협력 모델은 성공하면 ‘대박’이다. 정부가 기업과 교수 사이 충분한 신뢰가 쌓일 수 있도록 초기에는 연구개발 지원금 및 계약 보증 등을 통해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원기술연구소를 둘러보기 위해 이 교수의 차에 동승했다. 그 흔한 차량용 내비게이션이 보이지 않았다. 이 교수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집과 학교밖에 갈 곳이 없으니 내비게이션을 쓸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연구를 시작하면서 10년간 휴가를 못 갔다. 방학도 없었다”고 말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최우선인 시대, 이 교수의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은 욕심일까. 이 교수는 “재밌었으니 괜찮다. 재밌으니까 나도 하게 된 것”이라고 갈음했다.
이 교수가 산학협력으로 개발한 압축기는 양산에 성공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1800만대의 자동차에 공급됐다. 2011년부터는 독일 폭스바겐 자동차에 연간 20만대씩 공급되고 있다.
안성=이동수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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