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르면서 카페는 갤러리와 공연 등이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 되었고, 젊고 감각적인 청년 사업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아이덴티티’가 명확한 스타일리시한 장소가 되었다. 안젤라의 푸드트립 서른아홉 번째 여행지는 1930년부터 커피의 도시로 발전한 대구다.

#천국의 계단으로 올라가는 인생샷을 찍자
커피 이야기를 하는데 웬 대구냐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구하면 ‘막창’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구는 서울보다 1인당 커피 소비량이 높고 대한민국 1세대 커피 바리스타가 탄생한 곳이다. 1930년대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천재화가 이인성은 ‘아루쓰 (ARS)’ 라는 다방을 열어 예술인들이 문화를 교류하는 장이 됐고, 1947년 북성로 백조다방를 거쳐 화가와 시인 등 문인들이 모이는 사랑방 역할을 했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러 오는 공간이 아니라 문화예술을 창조하는 소통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수성못 인근 ‘카페 편’은 3∼5층 3개층으로 구성된 복합문화공간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는 다양한 커피와 디저트 메뉴뿐만 아니라 2020년을 캘리그래피로 풀어낸 디자인 소품들과 플로리스트가 운영하는 플라워숍이 숍인숍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뻥 뚫린 건물의 중앙에는 1mm의 오차 없이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고, 사전 예약을 하면 서로 다른 콘셉트의 룸에서 특별한 모임도 가질 수 있다. 카페 편이 더욱 유명해진 계기는 바로 5층에 있는 포토존 때문인데, 하늘이 맑고 구름이 많은 날 가면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고 있는 듯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섭씨 300도 이상의 모래로 끓이는 터키시 샌드커피
차로 가는 것보다 뚜벅뚜벅 걸어서 찾아가는 게 더 가까운 ‘카페 쿰’에서는 터키시 샌드커피를 만난다. 섭씨 300∼400도 사이의 뜨거운 온도로 달궈진 모래 속에서 커피가 끓어오르는 모습을 즐기는 재미가 큰 곳이다. 터키시 커피는 “커피 한 잔을 마시면 40년 동안 기억한다”라는 터키 속담이 있을 정도로 커피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터키시 커피는 역사적으로 사회화, 즉 소셜라이징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여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새로운 소식을 공유하고, 독서를 하는 등 문화공간을 창조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 이유는 터키시 커피만의 특별한 추출법 때문인데, 커피를 끓이는 포트인 제즈베(Cezve)와 커피잔 핀잔(Fincan), 절구 등 특수한 도구들을 사용한다.
대구의 커피딜라이트 투어를 따라 찾아간 카페 쿰은 ‘터키 커피가 좋아서’라는 이유 하나로 여성 바리스타 분이 오픈한 곳으로, 규모는 작지만 아기자기한 빈티지 소품들이 채워져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원두는 모래 요정으로 필터링한 커피와 필러링하지 않은 두 가지 방식의 커피를 맛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필터링하지 않은 따뜻한 커피를 추천한다. 뜨거운 모래의 열을 받아 끓어오른 원두가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 한 잔을 다 마시면 3단계의 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두까지 조금 같이 씹으면서 먹으면 중배전으로 로스팅한 커피의 고소함을 느낄 수 있어 이색적이다.

#만드는 사람도 오는 사람도 힙하다
아침 7시 반에 오픈하는 ‘사운즈 커피’. 새하얀 파사드에 2020년 팬톤 컬러로 선정된 클래식 블루 계열인 파란색 포인트들이 구석구석 스며들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닥은 청아한 파란색 타일로 깔려 있고, 80비트의 힙한 사운드 속에서 잡지에서나 보았던 하이클래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열심히 커피가 추출되고 있다. 30대로 보이는 젊고 키가 큰 바리스타가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오늘은 게이샤 커피를 꼭 맛보시길 바란다”며 미소를 지었다.
게이샤 커피는 세계 3대 커피로 유명 카페 브랜드의 생두 구매 바이어인 제프 와츠가 ‘마치 한 줄기 빛이 쏟아져 나오는 커피’라고 표현한 아프리카 산지의 커피다. 게이샤 커피는 고향인 에티오피아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1930년 파나마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으면서 파나마가 게이샤의 제2의 고향이 됐다. 가격이 워낙 비싼 커피라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사운즈 커피에서는 일반 원두 가격으로 게이샤 커피를 즐길 수 있었다. ‘최고의 재료와 최고의 장비로 저렴하게’ 커피를 제공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사운즈 커피에서 맛본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맛은 과일 바구니에서 산미가 가득한 과일들이 내 앞으로 굴러떨어져 온 맛이다. 살면서 맛본 커피 맛 중에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우고 싶다. 상하목장 우유로 만든 아포카토와 라떼, 달콤한 아인슈페너 한 잔은 헛헛한 마음을 가득 채워준다. 커피 한 잔으로 문화생활이 이루어지는 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니 대구가 왜 커피의 도시로 불리는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foodie.ange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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