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이 ‘사이버’를 독립한 하나의 병과(兵科)로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보병, 포병, 기갑 등과 나란히 전투병과에 편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직후 국방부 직속의 10번째 통합전투사령부로 ‘사이버사령부’를 창설한 데 이어 미군에서 사이버 작전의 비중이 갈수록 더 커지는 분위기다.

◆미 육사, 내년 졸업 예정자 40명에 '사이버' 병과 부여
15일 미 육군에 따르면 내년 봄 졸업 및 소위 임관을 앞둔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들이 최근 병과 배정을 받았다. 미 육군의 장교 후보생은 총 17개 병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번에 육사 4학년 생도 1089명 가운데 40명이 사이버 병과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지난해 25명보다 훨씬 늘어난 숫자다. 미 육군에서 사이버 병과의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음을 보여준다.
눈길을 끄는 점은 그동안 지원병과의 일종으로 여겨져 온 사이버가 올해부터 전투병과로 분류됐다는 것이다. 미 육사측은 생도들에게 병과를 배정하며 사상 처음으로 사이버를 △보병 △기갑 △공병 △방공 △포병 △병기(兵器·ordnance) 등과 대등한 전투병과로 인정했다.
이와 관련해 육사 관계자는 “미 육군을 이끄는 선임 지휘관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싸워야 하느냐에 주목하고 있다”며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작전들 속에서 사이버 작전이 일종의 ‘무게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게 육군 지도부의 관점”이라고 전했다.
미 육군이 사이버를 하나의 독립한 병과로 만든 것은 2014년이다. 이는 지상이나 해상, 공중에서 벌어지는 전투 못지않게 사이버 공간에서의 전투를 중요하게 봤기 때문이다.
국내의 한 군사 전문가는 “미군은 사이버 공격·방어와 지원을 포함한 사이버 작전의 필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해 사이버 작전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양성하고, 또 사이버 작전 관련 업무에 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통합 사이버사령부 창설… "한국도 배워야"
실제로 미국의 육해공군과 해병대는 오래 전부터 자체 사이버 부대를 만들고 임무를 맡겨 왔다. 대외적으로는 ‘육군 제2군’으로 알려진 육군사이버사령부, ‘제10함대’로 통하는 해군사이버사령부, ‘제24공군’으로 불리는 공군사이버사령부, 그리고 해병사이버사령부가 그에 해당한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사이버 작전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돼 각군의 사이버사령부들을 통합적으로 지휘하는 ‘미합중국 사이버사령부(U.S. Cyber Command)’가 2017년 창설됐다. 이는 국방부 직속의 11개 통합전투사령부 중 하나로 군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대장이 사령관을, 그리고 중장이 부사령관을 각각 맡는다.
현 사령관은 폴 나카소네 육군 대장, 부사령관은 로스 마이어스 해군 중장이다.
한국의 경우 사이버는 아직 독립 병과가 아니다. 정보통신병과 내부에 있는 여러 특기 중 ‘사이버 정보체계 운용’ 정도가 있을 뿐이다. 육해공군 합동부대로 ‘국군사이버작전사령부’라는 부대가 있긴 하나 사령관 계급이 소장급에 불과해 존재감이 크지 않고, 사이버 작전 수행 전문성도 아직 약하다는 지적이다.
이명박정부 시절 사이버사령부 요원들이 선거를 앞두고 여당을 지지하거나 야당을 비판하는 글을 온라인 공간에 집중적으로 올리는 일종의 ‘댓글부대’로 동원된 정황이 드러나 현 문재인정부 들어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민간의 사이버 보안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군도 이제 독립한 사이버 병과나 사이버 작전 전문성을 담보한 주특기 신설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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