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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 미진으로 불복 사례 없게… 변호사·학계 등 참여 필요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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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내 '명예'는 내가 지킨다 / 기소는 유예… 명예도 '유예' 되나요? / 기소유예 제도, 전과자 양산 막으려는 취지 / 연 30만여건 처분… 해마다 20∼50건 취소 / 헌법소원 사건 접수 지난해 254건 달해 / “헌재 역할·위상과 안 맞는다” 목소리 커 / 高法 재정신청 손 봐 처분 당부 결정 주장 / 사법부, 검사 불기소 처분 통제 수단 구축 / 검찰에 대한 감찰 강화·엄격한 내부 심의 / 무혐의 판정 사안, 무리한 처분 없게 해야

기소유예제도는 실은 ‘전과자’ 양산을 막을 목적으로 도입했다. 혐의가 인정되기는 하지만 잘못이 그리 크지 않거나 깊이 반성하는 사람들까지 무조건 재판에 넘겨 형사처벌을 하느니 ‘이번에는 봐주겠는데 또 그러면 그때는 용서가 없다’라는 엄중한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다신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하자는 것이 원래 취지다.

 

29일 법조계와 법학계에 따르면 이런 기소유예제도의 목표는 그런대로 잘 달성되고 있다. 2015년 37만8723건, 2016년 37만6137건, 2017년 33만8971건 등 연간 대략 33만∼37만건의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진다. 대부분 그대로 받아들이고 불복하는 이는 해마다 200∼300명 정도다. 이 제도로 인해 ‘혜택’을 본 이가 ‘손해’를 본 이보다 훨씬 많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 개선을 논의하는 건 기소유예 처분을 ‘사실상 유죄’로 받아들여 완강히 거부하고 반드시 ‘결백’을 입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또한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소유예 전력자가 직장에서 징계를 받거나 공무원 채용 시험에서 불이익을 받는 등 기소유예 처분에 기본권 제약 요소가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 만큼 기소유예 취소 및 무혐의 처분을 요구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 또한 존중돼야 마땅하다.

 

◆기소유예 취소 청구, 헌재 대신 법원이 심사해야

 

전문가들은 우선 기소유예 처분과 관련해 취소 등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헌재에 헌법소원을 내는 것뿐인 현행 제도는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기소유예를 취소해 달라’는 취지의 헌법소원 접수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헌법재판관 9명이 이런 유형의 사건 심리에 들이는 공도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헌재에 따르면 기소유예 취소 헌법소원 사건 접수는 2015년 162건, 2016년 228건, 2017년 263건, 지난해 254건으로 대체로 해마다 늘고 있다.

 

당연히 헌재 관계자들 사이에선 “당사자의 딱한 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나 이 나라 최고 법률가인 재판관들이 기소유예 사건 수사기록에 달라붙어 그 당부를 판정하는 건 헌재에 주어진 진짜 역할이나 최고 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에 비춰 어울리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검찰 기소유예 처분 심사권을 헌재 대신 법원이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눈길이 쏠린다. 현재 고소인 또는 고발인이 기소유예 등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하는 경우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낼 수 있다. 이 재정신청제도를 손봐 피의자가 불복하는 기소유예 처분의 옳고 그름 역시 법원 재정신청에서 따지자는 것이다.

 

이경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기소유예 같은 사건들은 헌재로 넘기는 것보다 법원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검사의 불기소 처분을 사법부가 통제하는 수단을 구축할 수 있고, 헌재가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건들 전담부서로 변질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앞 태극기와 검찰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연합뉴스

◆수사 관행 개선이 먼저… “검사 감찰도 강화해야”

 

검찰 스스로 기소유예 처분을 할 때 보다 엄격한 내부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선 지방검찰청 검사가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수사 경험이 풍부한 상급 검찰청 등의 연륜 있는 검사가 다시 살펴보게 하자는 것이다. 기소유예 처분 관련 심의에 검사뿐만 아니고 변호사, 법학자, 언론인, 시민단체 관계자 등도 참여시켜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시각을 반영해보자는 주장 또한 제기된다.

 

이진국 아주대 로스쿨 교수는 “주민이나 외부 전문가가 참여해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이 과연 옳은지 판단하게 하는 등의 통제 장치를 생각해볼 수 있다”며 “꼭 외부인사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검찰 내부에 위원회를 만들어 피의자가 불복하는 기소유예 처분이 ‘유죄’를 전제로 한 기소유예인지, 아니면 수사가 미진해서 대충 기소유예 처분을 한 것인지 판단하도록 해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굳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검찰 수사 관행을 바꾸는 게 먼저라는 시각도 만만찮다. 애초 무혐의로 판정해도 될 사안에 기소유예 처분을 내리는 일이 없도록 하고 이를 어기면 불이익을 가하는 형태로 검사들 사이에 ‘철저한 수사’와 ‘신상필벌’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취지다.

 

최병각 동아대 로스쿨 교수는 “본질적인 해답은 검찰의 책임을 강화하고 제대로 수사를 하도록 인식과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라며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제대로 기소권을 행사하지 않고 찝찝하게 기소유예 처리나 하고 이러면 어떠한 책임을 묻는다든가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논의되는 검찰에 대한 감찰 강화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 청구권’ 주목 시선도

 

일각에선 우리 헌법이 국민 기본권의 하나로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기소유예란 검사가 재량으로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인데, 이런 처분이 되레 재판 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다.

 

헌법은 재판과 관련해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27조 1항),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27조 3항) 등 조항을 두고 있다. 물론 형사사건은 민사사건과 달리 원칙적으로 검사한테만 재판 청구권이 있고, 일반 국민은 그럴 권리가 없다. 검사에게 기소유예 등 불기소 결정을 할 권한을 부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그럼에도 검사의 기소유예 처분으로 명예가 훼손됐다고 여기는 이들은 “피의자가 기소유예에 불복하면 그냥 기소를 해서 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리게 하라”고 요구하곤 한다. 재판에 넘겨졌다면 법정에서 무죄를 다퉈 결백을 입증할 수 있었을 텐데 현행 기소유예제도는 판사한테 재판을 받을 기회조차 봉쇄하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예인 권오용 변호사는 “피의자 입장에서 (기소유예 처분이) 억울한 경우에는 시정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며 “(기소유예 처분 대상자가) 무죄라고 주장하는 경우 법원에서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해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김태훈·김민순·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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