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용의자 이춘재(56)로부터 8차 사건에 대한 ‘유의미한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그동안 별개의 범죄로 분류된 8차 사건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자백한 상태다. 이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처벌까지 받은 윤모씨는 ‘당시 고문으로 인해 허위 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의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11일 YTN라디오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에서 “30년 전의 반인권적인 수사를 이제 경찰이 밝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씨 변호인 “1·2·3심 변호인 한번도 못봐”
윤씨가 재심을 준비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여론의 화살은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과 유죄를 내린 법원을 향하고 있다. 박 변호사는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약간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건이 1심에서 자백했던 사건이고, 자백이 담긴 조서의 내용이 구체적이었던 건 맞다”며 “이걸 법원의 과오에 의한 판결로 보도가 나가는 것은 좀 아쉽다”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오히려 국선변호인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면서 “재판 과정에서 더 신중한 심리가 이뤄지게끔 변호인이 조력했어야 하는데, 1·2·3심 변호인을 (윤씨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걸 또 변호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며 “당시 이 사건의 분위기가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고유정 사건과 같이 여론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윤씨가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해서 허위로 어떻게 자백을 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을 많이 갖는다”며 “어찌 보면 합리적인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허위자백이라는 것은 자기가 하지도 않은 죄를 자백한 것”이라며 “이런 비합리적인 사실관계를 합리적인 잣대로 볼 때는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윤씨에 대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분”이라며 “가난했기 때문에 배우지 못했고, 소아마비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사회적 약자가 정말 도움을 받았어야 하는데 방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변호인의 조력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자백을 할 경우) 굉장히 큰 형벌을 (받긴) 하지만 당시 가혹행위나 고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수사에 기한 두지 않을 것”
경찰은 8차 사건과 관련한 증거를 당시 검찰로 송치했고, 검찰은 증거물보존기간이 만료된 2011년 폐기한 상태다. 현재 경찰은 당시 송치하지 않은 일부 증거만을 갖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씨를 비롯한 당사자들의 진술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박 변호사는 “진술증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서 무죄를 얘기하기는 성급한 것 아니냐라는 말씀을 하신다”며 “다만 진범으로 나타난 사람의 진술증거에 의미가 부여됐고 그 진술증거를 보강하는 자료들이 있다. (그것은) 당시 사건기록에 다른 사람들의 진술”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의 진술이 실제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유의미한 진술’이 있다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이런 진술은 당시 수사를 했던 사람이나 재판을 했던 사람, 사건 기록을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술”이라며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춘재의 자백을 (경찰이) 강제로 끌어내거나 유도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며 윤씨의 주장에 무게를 더했다.
다만 경찰을 향한 비판 여론에 30여년전 경찰의 수사 상황을 일정 부분 고려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는 “30년 전의 수사가 지금도 똑같이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없다”며 “오히려 지금 30년 전의 잘못을 확실히 밝혀낸다면 ‘이제 경찰을 한 번 믿을 수 있겠구나’ 하는 평가도 충분히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찰은 8차 사건의 진범 논란이 일자 “기한을 두고 수사할 사안은 아니다”며 진상 규명을 위해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찰은 이씨의 진술을 토대로 당시 수사 기록과 증거물 감정 결과, 관련자 진술 등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8차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가지고 있는 일부 증거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을 상대로도 조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자백이 맞을 경우를 대비해 당시 수사에 과오가 있었는지, 당시 수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윤모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자백을 받은 경위 등을 수사하고 있다”며 “화성사건의 진실규명과 함께 당시 경찰의 수사 과정에 대해서도 한 점 의혹이 남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할 것을 국민께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박모양이 성폭행을 당한 뒤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윤씨는 범인으로 검거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항소는 기각됐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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