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씨는 지난해 3월9일 온라인 사이트를 이용해 5월7일 인천에서 일본 오키나와로 향하는 왕복 항공권 3장을 83만원에 구입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겨 사흘 만인 12일 취소해야 했다. 대한항공은 대행수수료 3만원을 포함해 24만원을 제하고 59만원만 환불했다. A씨는 한국소비자원에 피해구제를 신청했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규정을 들어 대한항공에 24만원을 환급하라고 조정했다. 대한항공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 신혼여행을 망친 B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지난해 6월 하와이 호놀룰루행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예정시간보다 출발이 3시간40분이나 지연됐다. B씨는 배상을 요구했지만 대한항공은 출발 당일 항공기 기체 결함은 ‘불가항력적 사유’라며 배상을 거부했다. 소비자분쟁해결 기준상 ‘2시간 이상 4시간 미만 운송지연 시 구간 운임의 10% 배상’을 적용, 편도운임 110만원의 10%인 11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조정했다. 대한항공은 이 조정도 수용하기를 거절했다. 대한항공이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 조정을 상습 거부한 기업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불명예스러운 1위다.
소비자원 분쟁조정에 강제력이 없다는 점을 잘 아는 기업들이 분쟁조정 결정을 상습 거부해 소비자들 피해를 키우고 있다. 소비자로서는 소송까지 가든지 포기하든지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적은 비용과 시간으로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가 기업들의 비협조로 무력화하고 있다.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전재수 의원실이 한국소비자원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소비자분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31건의 분쟁조정 건 중 15건을 받아들이지 않아 조정거부 다발기업 1위에 올랐다.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비율이 48.4%에 이른다. 대한항공은 2015년 분쟁조정거부 다발기업 13위에 오른 데 이어 2016년 2위, 2017년 1위를 기록했다. 대한항공에 이어 위메프가 37건 중 12건(32.4%)을 불수락해 2위, 교원이 17건 중 11건(64.7%)을 불수락해 3위에 올랐다. 아시아나항공은 22건 중 10건(45.5%)으로 4위, 네이버는 95건 중 9건(9.5%)의 조정을 수용하지 않아 5위를 기록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 분쟁조정은 법원까지 가서 사법적 구제 절차를 밟기 이전에 할 수 있는 마지막 분쟁해결 수단이다.

전재수 의원은 “물컵 갑질 논란이 있었던 2018년 대한항공은 안에서 직원에게 갑질, 밖에서 소비자에게 갑질을 일삼은 셈”이라며 “조정 결정에도 피해를 보상받지 못하는 억울한 소비자들을 위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도급 순위 상위 20개 건설사 중 한국소비자원에 피해 사례가 가장 많이 제기된 곳으로 대우건설이 꼽혔다.
바른미래당 유의동 의원이 소비자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지난 7월까지 도급순위 상위 20개사의 전체 소비자 피해 상담 건수는 1870건으로, 대우건설(341건)이 차지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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