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미국 수도 워싱턴 바로 옆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6·25전쟁 도중 전사한 참전용사의 뒤늦은 안장식이 열렸다. 전사 당시 불과 19세의 청년이었던 헨리 후버 존스라는 이름의 육군 보병이 주인공이다.
존스는 70년 가까이 ‘실종’ 상태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합의에 따라 올해 초 북한에서 송환된 미군 유해 55구 가운데 한 구의 신원이 존스로 판명난 것이다.
◆"묘역 넓혀도 2050년대 중반이면 꽉 차… 안장 기준 바꿔야"
이제 90대 노인이 된 존스의 세 누이가 유해를 인계했다. 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존스는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혀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세계 최강의 미군, 그리고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알링턴 국립묘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묘지를 관리하는 미 육군은 안장 대상자 선정의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29일 미 육군에 따르면 라이언 맥카시 육군장관 대행은 최근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 기준 변경을 공식 제안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변경안을 놓고 공청회 등을 열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입법 절차에 정식으로 착수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지난해 5월 기준으로 약 42만명이 묻혀 있다. 문제는 지금의 기준대로라면 2200만명에 달하는 현역 군인과 퇴역 군인이 앞으로 더 안장돼야 하는데 고작 9만5000명을 위한 공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2040년대 초반쯤 되면 더 이상 안장이 불가능한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동안 묘역을 넓히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알링턴 국립묘지 남쪽으로 14만9734㎡(약 4만5300평)의 부지를 조성, 기존 묘역에 추가한다는 계획이 이미 수립돼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더라도 2050년대 중반까지 묘지가 포화 상태에 이르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결국 안장 기준 변경이란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게 미 육군, 그리고 알링턴 국립묘지 관리사무소 측의 판단이다.
미 의회도 올해 2019년도 예산안을 짜며 “향후 150년간 알링턴 국립묘지에 추가적 안장이 가능할 수 있도록 안장 기준 변경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최고 등급 훈장 수훈자로 제한? "장기복무자들 반발 거셀 것"
물론 알링턴 국립묘지가 꽉 차면 더 이상 안장을 하지 않고 대신 다른 곳에 더 넓은 부지를 마련, 완전히 새로운 국립묘지를 조성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알링턴 국립묘지 측이 약 25만명의 퇴역 군인과 참전용사, 그 가족, 그리고 현역에 복무 중인 군인들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응답자의 95%가 “알링턴 국립묘지가 미래에도 계속 애국자들의 안장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결국 유일한 방안은 안장 대상자 선정의 기준을 보다 엄격하고 까다롭게 고쳐 그 숫자를 줄이는 것뿐이다.
현재 미 육군은 명예훈장(Medal of Honor)이나 은성훈장(Silver Star), 퍼플하트(Purple Heart) 같은 최고 권위의 훈장 수훈자, 작전 도중 전사자(Killed in Action), 전쟁포로 출신자, 미국 대통령 및 부통령을 지낸 자 등으로 알링턴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를 축소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는 육군이 관리하는 알링턴 국립묘지 외에 국가보훈처가 운영하는 국립묘지 137곳이 더 있고, 각 주에서 운영하는 참전용사 묘지도 115곳에 달한다. 알링턴 국립묘지 말고 이런 곳들에의 안장을 정부가 적극 권유하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알링턴에 묻히겠지’ 하는 기대감 속에 살아가는 수많은 참전용사 노병들이 이를 쉽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미 언론은 “알링턴 국립묘지의 의미는 다른 곳에 비할 수 없이 크고 영예롭다”며 “전우들과 함께 알링턴에 묻히기를 기대했던 참전용사들과 장기 복무 장교들, 목숨을 걸고 전선에서 싸운 장병들이 안장 대상에서 배제될 경우 상당한 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