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어제 국회에 출석해 “일본은 2일 각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절차대로 진행되면 백색국가 제외 조치는 다음달 하순 발효된다. 1100여개 품목 수입에 차질이 빚어진다. 반도체·디스플레이뿐 아니라 거의 모든 국내 산업 분야에서 일본 전략물자를 들여올 때 개별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당·정·청은 일본이 조치를 강행하면 ‘반도체 등 부품·소재·장비 경쟁력 강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맞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한·일관계는 수습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다.
대한항공이 오는 9월3일부터 현재 주 3회 운항 중인 부산∼삿포로 노선 운항을 중단한다고 한다. 아시아나항공도 9월 중순부터 일부 일본 노선의 항공기를 소형 기종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일본 제품을 사지 말자는 ‘보이콧 재팬’ 바람이 항공시장에도 몰아치는 것이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이 줄면서 현지 관광업계가 울상이라고 한다. 일본이 추가 보복조치를 밀어붙이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불길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한국 기업에 큰 충격을 주지만 일본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한·일관계를 막다른 길로 몰고 가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려는 시도를 멈춰야 한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마당에 여권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 가능성을 거론하는 건 문제다. 더불어민주당 일본경제침략대책특위 위원장인 최재성 의원은 어제 “GSOMIA의 전제는 양국 간 신뢰인데, 신뢰가 깨지고 어떻게 안보와 관련된 협정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며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면 GSOMIA 연장에 동의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했다.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여당 중진 의원이 한·일 안보관계까지 흔드는 발언을 쏟아내는 건 경솔하다. 이번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중·러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에서 보듯 양국의 안보협력은 필요하다. 일본이 GSOMIA 유지를 희망하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한·일 감정의 골이 아무리 깊더라도 안보 문제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일이 치킨게임을 계속하면 양국 간에 50년 이상 쌓아온 안보·경제 협력관계는 무너지고 공멸의 길을 걸을 것이다. 작금의 갈등이 파국적인 사태에 이르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방콕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개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강 장관이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회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한·일 양국은 냉철한 시각으로 외교적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 함께 머리를 맞대면 출구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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